한미 양국이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하며 최악의 통상 충돌은 피했지만, 대규모 투자·에너지 구매와 철강 관세 유지 등으로 한국에 장기적 부담이 남게 됐다. [사진 = 한화오션]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한미 양국이 지난 8월 1일 통상 마찰의 최대 고비를 넘겼다.
미국이 이날부터 한국산 제품에 부과하려던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기로 전격 합의해 자동차와 부품을 포함한 주요 품목에 같은 관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0% 관세를 누려온 한국 자동차 업계는 관세율 15%가 타격을 주겠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최악의 관세 폭탄은 피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완전하고 전면적인 합의”라고 강조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라고 밝혔다.
◇ 3500억 달러 대미(對美)투자...에너지 1000억 달러 구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한미 관세협상의 핵심은 대규모 투자와 에너지 구매 약속이다.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 (약 488조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투자 패키지를 좀더 살펴보면 1500억 달러는 조선업 전용 펀드다. 이에 따라 이 돈은 선박 건조·정비(MRO)·조선 기자재 등 미국 조선 생태계 전반을 지원한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 산업 분야에 투자·대출·보증 형태로 집행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 등의 보증 방식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에너지 분야는 한국이 향후 4년간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원유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규모를 4년간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존 중동산 원유 수입의 20~30%를 미국으로 대체하는 수준”이라며 경제적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농축산물 방어선 유지…반도체는 MFN 적용
농축산물 분야에서 한국은 쌀·소고기 등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을 막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기존 개방 범위를 유지하며 식량 안보를 지켰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미 미국산 농축산물의 99.7%를 개방한 상태다.
다만 농업계는 향후 검역 완화 조치가 사실상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의약품 등 핵심 산업 품목은 미국·일본·EU와 같은 최혜국 대우(MFN)를 적용받게 됐다.
이는 향후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 속에서 최소한의 방어 장치로 평가된다.
◇ 철강·알루미늄 50% 관세 유지…국내 업계 초긴장
이번 관세협상에서 철강·알루미늄·구리에 부과하는 50% 고율 관세는 그대로 유지됐다.
일본·EU도 같은 관세율을 적용 받지만 미국 내 생산 기반이 미비한 한국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는 실적 악화와 자동차 업계의 철강 원가 인하 요구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편 이번 협상에 따른 후폭풍 우려가 커지면서 경북 포항은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됐다.
국회는 철강업계를 지원하는 이른바 ‘K-스틸법’을 추진하며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와 친환경 녹색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 구두 합의 수준…후속 정상회담서 세부 조율
이번 한미 양국 합의는 사실상 ‘구두 약속’에 가깝다.
문서화하지 않은 합의는 이행 여부와 조건 해석이 서로 달라 결국 미국 판단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발언했지만 세부 내용에는 양국 간 입장차가 있다.
이에 따라 향후 2주 내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 투자 패키지 사용처 및 수익 배분 구조 △ 에너지 구매 이행 계획 △ 관세 적용 시점 등 후속 협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 전문가·외신 “최악 모면했지만 장기 부담 커져”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단기 위기는 넘겼지만 장기 부담은 남았다”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와 니혼게이자이는 “최악은 피했지만 한국산 제품의 미국 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이 따라 정부와 현대차·기아는 품질·기술 경쟁력 강화와 브랜드 전략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 중심 통상 전략에 맞춰 합의 이행을 철저히 하고 국내 산업 보호와 신산업 육성을 병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