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하나금융연구소, '조각투자 이해하기']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최근 부동산이나 미술품, 음악 저작권처럼 과거에는 일부 자산가들만 접근할 수 있었던 영역에 일반 개인들도 투자자로 참여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 작품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구입하거나, 건물의 일부를 나눠 보유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조각투자’라 불리는 형태로, 소액 투자자 여러 명이 함께 하나의 자산을 소유하고 그 자산이 매각되거나 수익을 낼 때 지분 비율에 따라 이익을 분배받는 구조다.

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논란도 뒤따랐다.

‘단순한 투자상품인가, 아니면 주식처럼 법적 보호를 받는 증권인가’라는 논의가 이어졌고, 법적 성격이 불분명하다보니 업체마다 기준이 달라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토큰증권(Security Token)’ 제도화는 이러한 조각투자 시장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이다.

◇ 고가자산의 ‘분할투자’가 불러온 흐름

토큰증권이 등장한 근본적 배경은 높아진 자산가격과 유동성에 대한 새로운 수요다.

과거에는 부동산·미술품·음악 저작권 등 고가 자산에 대한 투자가 기업이나 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개인 투자자들도 공동투자(co-investment) 형태로 다양한 실물자산에 참여하고 있다.

조각투자는 이렇게 하나의 자산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해당 자산이 매각되거나 수익을 낼 때 지분 비율에 따라 이익을 분배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조각투자는 법적으로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아 투자자 보호와 거래 투명성 측면에서 한계를 지녔다. 또한 실물자산이 실제로 매각되기 전까지는 투자금 회수나 차익 실현이 불가능해 유동성이 극도로 낮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토큰증권(Security Token)이다.

토큰증권은 현실 세계의 자산(Real World Assets, RWA)을 블록체인 상에서 ‘토큰화(Tokenization)’해 증권 형태로 발행한 디지털 자산이다.

예를 들어 10억 원짜리 부동산을 1만 개의 토큰으로 쪼개면 투자자는 1만 원 단위로 해당 건물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이 토큰은 블록체인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어, 자산이 매각되기 전이라도 즉시 차익 실현이 가능하다.

즉, 토큰증권은 조각투자에 ‘증권성’을 부여해 제도권으로 편입시킨 형태다.

따라서 단순히 공동 소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는 자본시장법이 규율하는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받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분산원장 기술(거래 내역을 여러 참여 노드에 동시에 기록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 정부, 제도화 속도전…스몰라이선스·장외거래소 도입

금융위원회는 2023년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한 이후 2025년에 들어서 제도화 실행 단계에 돌입했다.

지난 2월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조각투자 사업자가 일정 금액 이하의 증권형 토큰을 간소화된 절차로 발행할 수 있는 ‘스몰라이선스(소액발행 인가)’ 제도를 신설했다.

이 제도를 통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도 대형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감독당국의 관리 아래 합법적으로 소액 단위의 토큰증권 발행이 가능해졌다.

이어 9월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가로 의결해 비상장주식이나 조각투자 상품을 사고팔 수 있는 전용 장외거래소(Alternative Trading System)를 도입했다.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된 증권형 토큰을 공식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구조로,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불법 발행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혁신금융과 투자자 보호가 병존하는 시장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투자자 보호 불충분”…우려의 목소리도 여전

하지만 토큰증권의 제도화 흐름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법보다 시장이 앞서고 있다”며 충분한 감독체계 없이 제도화가 추진될 경우 ‘가상자산 사태’의 재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토큰화 대상이 되는 실물자산은 미술품·저작권·부동산 등 객관적인 가치평가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비정형 자산이 많다.

일부 조각투자 플랫폼은 발행가 산정 근거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수리가 보류된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우려는 투기화 가능성이다.

토큰증권은 소액 투자자의 진입 문턱을 낮췄지만, 단기 차익을 노린 거래가 몰릴 경우 자산의 본질 가치와 시장 가격이 괴리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와 발행가 검증 절차를 제도화와 동시에 마련하지 않으면 시장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정부는 나서는데, 국회는 지지부진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토큰증권 제도화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이미 민간 시장에서 조각투자와 유사한 형태의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이를 법적으로 정의하지 않을 경우 탈세·사기·자금세탁 등 비제도권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시장 규모가 이미 커진 상황에서 법적 틀 없이 방치하면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며,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제도권 내로 편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 또한 정부가 제도화를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감독 사각지대의 구조적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제도 없이 방치할 경우 불법 발행, 허위공시, 자금세탁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으며, 이를 방지하려면 투자자 보호장치와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춘 규율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허가 절차뿐 아니라 가이드라인 보완·판례 축적·민간 협의 등 실무적 기반을 함께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 차원의 법제화 논의는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토큰증권 제도화를 위한 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고, 22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되었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입법조사처는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음에도 제도화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관련 산업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전자증권법은 중앙집중식 계좌관리 방식만 허용하고 있어, 블록체인 기반 분산원장 구조의 증권은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속한 법 개정과 함께 증권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해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며, 국회가 조속히 제도화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conomytribu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