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한국은행]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2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7·8·10월에 이어 4연속 동결로, 이미 큰 폭으로 벌어진 한미 금리차에도 불구하고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한은의 판단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환율은 장중 1468.5원에서 출발해 금통위 발표 직후 1462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상승하며 1464.9원에 마감했다.
금통위가 통화정책 문구에서 ‘인하 기조’를 ‘인하 가능성’으로 바꾼 점은 매파적 변화로 해석됐지만 고환율 흐름은 유지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 중 금리 인상 가능성을 논의하자는 분은 없었다”며 “현 시점에서 금리 인상을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환율이 1460원대 후반까지 오른 상황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명확히 선을 그은 셈이다.
그는 최근 환율 상승 요인에 대해 “한미 금리차 때문이 아니고 단지 해외 주식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내국인)의 쏠림을 막아주면 환율이 빠르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젊은 분들이 왜 이렇게 해외투자를 많이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쿨해서’라고 답하더라”며 해외투자 증가를 일종의 ‘유행’으로 해석하는 발언도 내놓았다.
이 발언은 환율을 끌어올린 근본 요인에 대한 진단보다 개인 투자 행태에 책임을 돌린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은과 국민연금 간 650억달러 규모 외환스와프에 대해서는 “연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외환시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기획재정부]
같은 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외투자 과세 논란에 대해 “정부는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추가 과세를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날 간담회에서 구 부총리는 ‘서학개미에 세제상 페널티를 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책은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열려 있다”고 답해 시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특히 일각에서는 정부가 고환율 상황을 이유로 해외투자 억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이 같은 해석이 확산되자 기재부는 27일 오전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방안은 논의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기재부는 ‘22% → 40% 인상’이라는 허위 문서가 온라인에서 퍼진 데 대해서도 “사실과 전혀 다르며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해외주식 투자자들은 연간 250만원을 초과하는 양도차익에 대해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국내주식 양도차익이 사실상 비과세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상대적으로 높은 과세 체계라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정부가 추가로 세금을 올릴 경우 서학개미의 강한 반발 뿐 아니라 시장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어 국민연금·기재부·한은·복지부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가동해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일각에서는 “노후자금을 단기 외환 대응 수단으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 시선도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와 구글. 고환율 흐름 에서도 국내 개인투자자(서학개미)들의 매수세가 가장 많이 몰리는 대표 미국 기술주로 꼽힌다. [사진 = 엔비디아]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와 한은이 해외투자 행태를 환율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는 흐름에 대해 “원인보다 증상을 앞세운 진단”이라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원화 가치 하락을 체감한 개인들이 해외투자로 이동한 것은 방어적 선택”이라며 “이를 유행처럼 보는 해석은 시장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 안정의 핵심은 금리·통화·재정의 종합적 신뢰 회복”이라며 “해외투자 억제나 세금 강화 같은 조치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시장 분석가들 역시 해외투자 책임론이 반복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현재 환율 수준은 해외투자 증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기준금리 전망, 재정정책, 통화량 증가 등 구조적 요인이 누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고환율 국면에서 정책 당국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점은 시장에 명확한 신호로 작용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면 환율 불안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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