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TSMC 등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해 현금 지원 대신 무의결권 주식 취득을 조건으로 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세금 회수 장치이자 정치·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 The White House]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현금 보조금 대신 무의결권 주식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세금으로 조성한 CHIPS Act(반도체지원법) 자금을 단순한 보조가 아닌 투자 성격으로 전환해 납세자 보호와 기업 압박을 동시에 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 인텔 선례 확대…“납세자도 보상받아야”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삼성전자·TSMC·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대해 무의결권 지분 취득을 조건으로 한 보조금 지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논의에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참여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현재 인텔 지원금 일부를 의결권 없는 지분 10%로 전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세금이 일회성 ‘공짜 지원’으로 끝나지 않고 배당과 주가 상승분을 통해 회수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6월 "현행 지원금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재협상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삼성·TSMC, 정치·외교적 부담 불가피
삼성전자(47억5000만 달러·약 6조6000억원), TSMC(66억 달러·약 9조2000억원), 마이크론(62억 달러·약 8조6000억원) 등은 이미 지난해 말 구체적 지원금 규모가 확정됐다.
그러나 이번 논의가 현실화될 경우 일부 지원을 무의결권 주식으로 수령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본사 주가와 경영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주주들은 지분 희석으로 인한 EPS(주당순이익) 하락을 우려할 수 있으며, 미국 정부가 주주로 참여하면 향후 배당 정책에도 압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 사업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TSMC는 대만 내에서 ‘국가 전략자산’으로 인식되는 기업인 만큼, 미국 정부의 지분 참여가 주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배구조상 지분 희석이 민감한 문제여서 국내 투자자들의 반발도 거세질 전망이다.
◇ 정부는 “경영 개입 없다”지만…시장 파장은 불가피
러트닉 장관은 "정부가 기업 경영에 관여할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의 압박 효과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의결권 주식은 공식적으로 표결권은 없지만 △배당정책 압력 △주가 관리 부담 △정책적 지렛대 △기업 동향 모니터링 △시장 신호 효과 등 다양한 경로로 기업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세금 낭비 방지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치적 카드"이자 "미국 반도체 산업을 다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삼성과 TSMC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 안보 체계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는 대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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