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영풍-고려아연 분쟁 (3) 사모펀드 MBK의 ‘먹튀’ 또 되풀이되면 안돼

MBK-베인캐피탈 등 사모펀드 입김 커
英사모펀드 헤르메스, 삼성물산 주식 차익 거둔 후 ‘먹튀’
소버린자산운용, SK 주식 팔아 8000억원 넘는 차익 거머줘
MBK, 국내 알짜 기업 인수후 매각해 막대한 이익 챙겨
고려아연 인수후 10년간 성장시키겠다는 MBK 약속 신뢰도 의구심

이코노미 트리뷴 승인 2024.10.09 15:26 의견 0

최근 국내 재계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모으는 기업이 영풍과 고려아연이다. 두 업체는 지난 70여 년간 굳건한 협력자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최근 두 회사가 경영권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동지에서 적’으로 바뀐 셈이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트리뷴은 두 업체가 오랜 협력을 뒤로하고 갈등 양상을 보이는 원인과 주요 현안, 그리고 향후 전망을 4회에 걸쳐 기획기사로 다룬다. [편집자주(註)]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MBK파트너스와 베인캐피탈의 개입으로 사모펀드의 '먹튀'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특히 MBK의 과거 행보로 인해 재계의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는 고려아연과 영풍이 자리잡고 있지만 양쪽 진영에 합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베인캐피탈의 입김도 만만치 않다.

양쪽 가운데 누가 이기더라도 향후 이들 사모펀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들 사모펀드는 인수한 기업을 더욱 키우기보다는 기업 자산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다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이들 사모펀드 가운데 특히 MBK에 대해 베인캐피탈과 손잡은 고려아연은 물론 일반 재계도 근심 어린 시각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MBK가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겨 도망가는 이른바 ‘먹튀’ 행각을 벌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우려에는 과거 사모펀드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물산-헤르메스 사태’다.

영국 사모펀드 헤르메스는 2003년 11월 삼성물산이 발행한 총 주식 가운데 5%를 사들였다.

특히 헤르메스는 언론에 삼성물산을 지원할 듯을 내비쳐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주가가 일정 수준 오르자 헤르메스는 주식 전략을 팔아 300억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머쥐었다.

‘SK-소버린 사태’도 예외는 아니다.

모나코에 거점을 둔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은 2003년 당시 국내 최대 정유회사이자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 주식을 사들여 SK그룹과 경영권 쟁탈권을 벌였다.

소버린은 SK(주) 주식 14%를 매입한 뒤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최태원 회장의 이사회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 SK그룹의 직접 보유 지분은 소버린보다 적은 13%에 그친 점을 노린 것이다.

소버린의 공세에도 최태원 회장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돼 경영권을 장악해 소버린은 결국 패배한 셈이다.

이후 소버린은 2005년 6월 SK(주)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꾼 뒤 그해 7월 SK(주)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소버린은 SK(주) 주식을 1만원 이하에 사서 4만9000원에 팔아 8040억원의 차익을 거머쥐고 한국을 떠났다.

이처럼 사모펀드의 ‘먹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풍과 손잡은 MBK도 국내에서 ‘먹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MBK는 2013년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 ING생명 임직원 등에 회사를 약 10년 이상 보유하며 장기적으로 경영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MBK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이는 ‘‘먹튀’ 이미지가 강한 사모펀드에 대한 회사 안팎의 부정적인 시각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MBK는 ING생명을 인수한 지 약 6개월 만에 대대적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조직 쇄신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임원 32명 가운데 18명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는 평직원의 30%에 달하는 270명 감축을 목표로 내세우며 희망퇴직을 받았다.

당시 정문국 신임 ING생명 사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희망퇴직이 직원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회사가 변모할 수 있는 계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통보했다.

ING생명의 매각작업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법으로 정한 재매각 금지 기간 2년이 끝나자 MBK는 안방보험 등 중국계 금융회사를 포함한 매수 희망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후 MBK는 4년도 안 돼 ING생명 지분 40%를 매각했고 2018년 잔여 지분 일체를 신한금융지주에 넘겼다.

홈플러스도 마찬가지다.

MBK는 2015년 유통업체 홈플러스를 약 7조원에 사들이며 ‘인위적인 인력 감축·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MBK는 홈플러스 경영권을 인수한 후 20개가 넘는 홈플러스 점포를 폐점하거나 매각 후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처분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으로 고용 규모도 줄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홈플러스 직원은 약 2만명으로 2015년에 비해 5000명이 줄었다. 간접고용 직원 역시 5000여명 줄어 8년 만에 총 1만명 가량의 직원이 홈플러스를 떠난 셈이다.

MBK의 ‘약속 어기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MBK는 치킨프랜차이즈 BHC 인수 후 가맹점 계약 부당해지, 물품공급 중단 등 가맹사업법을 위반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억5000만원과 시정명령 처분을 받는 등 회사 성장이 아닌 매각으로 차익을 거두는 사모펀드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얻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추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10년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며 고용 창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고려아연을) 중국 업체에 매각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MBK가 과거 국내기업 인수를 추진하며 밝힌 약속 대부분은 경영권 확보 이후 ‘없었던 일’이 됐다. 이에 따라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한 후 과거와 같은 행보를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파는 사모펀드 특성상 MBK가 약속한대로 10년간 회사를 키울 지에 대한 의구심이 클 수 밖에 없다”며 “고려야연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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