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경로의존성’이라는 치명적 칵테일에 취했나

2분기 2조원 손실에 이르는 성적표 거머쥐어
‘경로의존성’ 늪에 빠져 GPU 등 새로운 흐름 대비 등한시
‘빈 카운터스’ 등장으로 기술혁신 보다는 비용절감에 무게
‘혁신자의 딜레마’ 벗어나 미래 대비하는 첨단기술 소홀히 하면 곤란

이코노미 트리뷴 승인 2024.08.03 00:21 의견 0
인텔의 2분기 실적은 매출 128억 달러와 순손실 16억 1000만 달러로, 시장 기대치를 밑돌고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사진 = 인텔]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 반도체의 대명사’ 인텔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텔이 1일(현지시간) 올해 2분기 매출액이 128억달러(약 17조4528억원), 순손실 16억1000만달러(약 2조1952억원)이라는 성적표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2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 줄어 애초 시장 전망치(129억5000만달러)에 크게 못미친 점도 실망스럽지만 영업이익이 아닌 영업손실이라는 결과를 낸 것은 더 충격적이다.

인텔은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메이드 인 USA’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생산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려 200억달러(약 27조2600억원)을 인텔에 투자하겠다는 통 큰 지원책을 지난 3월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듯 인텔의 2분기 경영실적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와 같은 어닝 쇼크 영향으로 인텔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주가가 무려 20% 가까이 급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결국 인텔은 2016년 이후 8년 만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태수습에 나서는 모습이다.

인텔은 실적 부진에 대한 탓을 임직원에게라도 하듯 임직원의 15%인 약 1만5000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해 비용 100억달러(약 13조6300억원)를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텔의 처참한 실적은 어떻게 보면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업계 ‘맏형’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미국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인텔 왕국’을 다시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인텔의 핵심 영역인 중앙처리장치(CPU)가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와 AMD 등 그래픽처리장치(GPU)업체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인텔이 새롭게 추진하는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AI에 절대적인 GPU가 관심을 모으면서 인텔의 CPU는 이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됐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텔이 2분기에 투자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결과를 받게 된 것은 비단 AI 흐름뿐만은 아니다.

인텔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함정에 빠졌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기존 인기 제품에만 집착하는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는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처방전’이다. 인텔은 기업이 한번 일정한 경로에 들어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의존성의 대표적인 희생양인 셈이다.

GPU가 미래 추세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텔은 마치 ‘사골국물’을 우려내듯 CPU에만 사실상 의존했다. 이와 함께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가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라는 점에 눈을 돌리지 않은 점도 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인텔은 AI 시대의 흐름에 뒤로 밀려나는 CPU에만 주력했고 새로운 기술에 대처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한 것이다.

인텔의 반도체 왕국이라는 간판에 어울리지 않고 실적 부진의 치욕을 맛보게 된 또다른 이유는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의 함정이다. 빈 카운터스는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는 재무-회계 전문가를 꼽는다.

재무통(通)이 CEO(최고경영자) 등 기업을 운영하면 투자 등 돈 쓰는 일에 다소 주저하는 성향을 보인다.

2013년 인텔 사령탑이 된 재무통 CEO 브라이언 크러재니치는 엔지니어들에게 원가 절감과 단기 성과를 주문했다. 또한 PC산업 성장이 주춤해진 2016년 인텔은 1만2000여명을 감원했다. 인텔에서 짐보따리를 싼 기술자들은 경쟁업체로 둥지를 옮기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처럼 첨단기술 개발보다는 ‘콩의 숫자만을 세는’ 사업 효율화만 강조하는 회사 분위기는 밥 스완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CEO 재임 기간인 2020년까지 이어졌다.

결국 인텔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셈이다.

이처럼 테크 기업에 중요한 기술개발이 아닌 수익 중심 경영정책은 자칫 회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치명적인 칵테일(lethal cocktail)’이다. 다른 경쟁 글로벌업체들이 첨단기술로 세계 무대에 앞다퉈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인텔은 기술혁신 부진에도 경로의존성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몇 년 전 타계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저서 ‘혁신자의 딜레마( 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세계적 우량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잃는 원인을 분석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글로벌 기업이 혁신자의 딜레마 희생이 되지 않으려면 ‘달콤한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일궈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초접촉사회를 맞아 시장과 고객 변화에 둔감하고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변화를 외면하는 ‘나홀로 갈라파고스’ 프레임에 함몰되면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으로 요약되는 제4차산업혁명의 높은 파도에 휩쓸려 좌초할 수밖에 없다.

2분기 실적에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CEO는 향후 회사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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