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내 생산 및 미래 산업 강화를 위해 향후 4년간 31조원을 투자한다. 이번 투자로 미국발 관세를 피하는 동시에 북미 시장 확대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정의선 회장. [사진 = 현대자동차]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미국에 31조원대에 이르는 통 큰 투자를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2일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의선 회장의 야심찬 행보는 관세 폭탄과 거대한 미국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의선 회장,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 투자

정 회장은 24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올해부터 2028년까지 4년 간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는 현대차가 1986년 미국에 진출한 이후 이뤄진 투자 규모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다.

현대차그룹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 현대차그룹 메트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50억달러, 로보틱스·도심항공모빌리티(UAM)·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55억달러 등 총 10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이번 행보는 현대차그룹이 자동차와 부품,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얘기”라며 “이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제조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먹거리를 거머쥘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야심찬 모습에 트럼프 대통령은 엄지척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는 위대한 기업”이라며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철강을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해 이들은 미국에서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라고 화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면제 언급을 액면가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라며 “미국에서 차량을 생산하면 관세를 낼 필요가 없지만 한국에서 수출하는 차량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거나 유예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對美) 무역흑자 규모가 크고 미국 수출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고 판단되는 국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라며 “지금 분위기를 살펴보면 현대차가 미국에 31조원 규모를 투자해도 현대차그룹만 특혜를 받기 어렵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자동차 관련 부품-완제품 모두 만드는 기반 갖춰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로 현대차그룹이 완제품인 자동차는 물론 관련 부품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고 평가한다.

미국 제조업 재건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발맞춰 관세 폭탄을 피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과 로봇 등에서 최고 기술을 갖춘 미국에서 우수 기업과 협력해 사업하는 등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러한 ‘큰 그림’을 보여주듯 현대차그룹의 이번 신규 투자 계획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진 대목은 현대차·기아의 120만 대 생산 체제 구축과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 건설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86억 달러를 투입해 신공장인 HMGMA의 연간 생산 능력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린다”라며 “이에 따라 2004년과 2010년 가동을 각각 시작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 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 대)과 함께 120만 대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도 가속페달을 밟는다.

현대제철은 58억 달러를 투입해 루이지애나주에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짓는다. 이 제철소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제철소로 연간 270만 톤의 생산 규모를 갖춘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이곳에서 원료 생산 설비와 전기로,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 설비를 갖춘다”라며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SK온과 함께 미국 내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인데 이르면 올해 말부터 가동을 시작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자동차 강판과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미국 내에서 조달해 현지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또한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 63억 달러를 투자한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로봇·인공지능(AI)·미래항공교통(AAM) 등 신기술과 관련해 현지 기업과 협력해 미래 사업을 추진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로보틱스 등 모빌리티(이동수단) 솔루션을 지능화하고 사업 전반에 AI 기술을 갖추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