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사우디와 합작해 중동 최대 시장인 사우디에 첫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비전 2030에 따른 사우디 제조업 육성과 친환경차 수요 확대에 발맞춰 중동·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사진 = 현대자동차]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미국이 아닌 중동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중동 등 향후 성장잠재력이 큰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장이 들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최대 자동차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차는 사우디를 거점으로 중동과 인접 시장을 공략하는 사업 청사진을 마련했다.

◇현대차, 사상 최초로 중동에 자동차 공장 세워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사우디국부펀드(PIF)와 손잡고 중동에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생산공장을 설립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King Salman Automotive Cluster)내 현대차사우디생산법인(HMMME, Hyundai Motor Manufacturing Middle East) 부지에서 14일(현지시간)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이날 착공식에는 장재훈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문병준 주(駐)사우디 대한민국 대사 대리, 이브라힘 알코라예프 사우디 산업광물자원부 장관, 야지드 알후미에드 PIF 부총재 등 주요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HMMME는 현대차가 지분 30%, PIF가 70%를 가진 합작 생산법인이다. 현대차는 내년 4분기에 HMMME를 가동해 연간 5만대에 이르는 전기자동차와 내연기관차 등을 모두 생산하는 이른바 ‘혼류 생산공장’을 가동한다.

야지드 알후미에드 PIF 부총재는 “HMMME는 사우디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현대차와 계속 협력해 사우디 모빌리티(이동수단) 생태계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관련 업계는 사우디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는 사우디가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 King Abdullah Economic City)에 새롭게 만든 사우디 자동차 제조 허브”라며 “사우디가 현대차와 손잡고 자국 내 자동차 제조는 물론 궁극적으로 사우디 자체 생산하는 차량을 만드는 사업 목표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내다봤다.

◇사우디, 중동에서 최대 규모 자동차 시장 갖춰

현대차 입장에서도 사우디는 눈여겨봐야 할 시장이다. 사우디가 연간 84만대 규모의 자동차가 판매되는 중동 최대 규모 자동차 시장을 갖췄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동 전체에서 자동차 249만대가 팔렸다”라며 “사우디가 중동 자동차 판매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사우디에서 사업 초기에 부품 상태 제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반제품조립(CKD)공장으로 운영하며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현대차는 HMMME에서 생산한 차량을 우선 사우디 내수시장에 판매하고 향후 기타 중동 국가 및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사우디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대차와 기아 등 현대차그룹은 사우디에서 올해 1분기 시장점유율이 24%로 일본 도요타(26%)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사우디 공장 건설을 계기로 일본 등 경쟁업체를 제치고 사우디에서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우디, ‘비전 2030’ 통해 제조업-친환경 에너지 사업 집중 육성

일각에서는 ‘석유 강국’ 사우디가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른바 ‘비전 2030’에 따른 것으로 풀이한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오는 2030년까지 기존 에너지 중심 산업 구조를 제조업, 수소에너지 등으로 다변화하겠다는 국가발전 청사진이다.

이를 통해 사우디는 석유 등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산업을 육성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얘기다. 사우디가 현대차와 협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 등 중동국가 최근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발전을 이뤄냈다”라며 “그러나 친환경 에너지 수요 증가에 힘입어 석유 등 화석연료가 설 자리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사우디는 제조업 등 다른 업종에 진출할 계획이며 자동차 분야도 여기에 포함된다”라며 “그러나 사우디는 자동차 생산시설이 전혀 없어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제2 도시’ 제다에서 100km 떨어진 킹압둘라 경제도시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수소차 등 친환경자동차를 비롯해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등을 집중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이는 가족 중심인 사우디 문화에서 대형 SUV 선호도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