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해진 파이(pie)를 두고 다투기보다 협력해 더 큰 파이를 만들자(“Business is cooperation when it comes to creating a pie and competition when it comes to dividing it.”) [사진 = PIXABAY]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그동안 시장점유율 확보를 놓고 물러서지 않는 경쟁을 펼쳐온 국내 기업들이 최근 잇달아 손을 잡아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하는 ‘관제 전쟁’을 펼치는 등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펼치고 있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포스코, 현대제철 美제철소 지분 투자 추진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그동안 경쟁 관계를 보여온 현대제철 소유 미국 제철소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州)에 전기로 제철소를 설립할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 제철소는 연간 270만t 규모의 철강을 생산하며 주로 자동차강판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이 제철소에 대한 투자금 총 58억달러(8조5000억원) 가운데 절반은 외부 차입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현대제철 등 계열사 및 기타 투자자와 지분 출자를 협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포스코가 현대제철의 유력한 투자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라며 “이는 포스코가 미국을 전략적 핵심 시장으로 보고 있는 점도 작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도와 북미 등 글로벌 성장 시장에서 소재부터 제품에 이르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또 “지난해 한국 전체 철강 수출액 가운데 국 비중은 약 13%”라며 “포스코 등 국내 철강사들도 같은 해 미국에 약 50만t 규의 열연강판을 수출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1기(2017~2021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한국산 철강에 연간 263만t 규모 무관세 수출 쿼터를 설정한 데 이어 최근 트럼프 2기에 25%의 고율 관세까지 부과해 포스코의 미국 수출도 타격을 입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가 고율 관세 부담을 줄이고 미국 철강 시장에 계속 진출하려면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투자 참여가 현실적인 방안인 셈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그룹은 현대제철과 손잡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현시점에서 확정된 바는 없다"라고 확답을 피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에 맞서려면 포스코과 현대제철과 ‘적과의 동침’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LG화학-SKIET, ‘배터리 전쟁’ 뒤로 하고 트럼프노믹스 폭풍에 제휴

LG그릅과 SK그룹도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맞서 손을 잡았다.

LG그룹 계열 LG화학과 SK그룹 산하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2차전지 핵심 소재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두 그룹은 과거 배터리 인력 유출 분쟁으로 갈등을 빚은 과거가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에 맞서 구원(舊怨)을 뒤로하고 협력 노선을 구축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이자 배터리용 분리막 제조업체 SKIET는 10일 미국 배터리 셀 제조업체에 30만대 분량의 전기차용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SKIET는 계약 조건에 따라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관련업계는 최종 납품처가 'LG에너지솔루션'인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자회사다. 이에 따라 LG화학이 SKIET로부터 프리미엄 습식 분리막을 공급받아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활용하고 이를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 배터리 인력 및 기술 유출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라며 “두 업체는 당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까지 하는 등 '배터리 전쟁'을 펼쳐 두 기업 간 갈등이 국가 전체 배터리 산업 신뢰도에 타격을 줬다는 평가까지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법정 다툼까지 벌인 양 측이 손을 잡은 것은 트럼프가 쏘아 올린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초래해 두 기업이 동지가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견제가 갈수록 위력을 보이는 가운데 두 기업의 협력은 한국 배터리 업계가 기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베리 네일버프와 애덤 브란덴버거의 ‘적과의 동침’ 효율 극대화하려면

이처럼 경쟁업체가 갈등과 반목을 뒤로 하고 서로 손을 잡은 ‘적과의 동침’은 1996년 배리 네일버프(Barry J. Nalebuff) 미국 예일대 교수와 애덤 브란덴버거(Adam M. Brandenburger) 하버드대 교수가 제안한 ‘코피티션(Co-opetition)’에서 출발한다.

코피티션은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로 상호 협력과 공정 경쟁을 통해 ‘윈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이론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시대에 국경이나 업종, 규모를 벗어나 시장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누구와도 손을 잡는 경영 전략이다.

위에서 언급한 포스코-현대제철, LG화학-SKIET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가 시장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머쥐려면 경쟁과 협력을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경쟁의 궁극적 목적은 경쟁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와 윈-윈(win-win)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과의 동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 지팡이’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적과의 동침이 업계 혁신을 가속화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라며 “그러나 자칫 양측 이해가 상충해 기술이 유출되는 등 신뢰 붕괴에 따른 협력 붕괴 가능성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또 “경쟁업체가 최근 협력기조에 나서는 것은 트럼프 관세 폭탄에 따른 업계 불확실성과 타격이 매우 큰 데 따른 것”이라며 “트럼프 관세 논란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들 업체간 협력 생태계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