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한미 통상 협력 강화의 핵심 고리로 부상하며,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사진 = HD현대]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이 한미 통상 협상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이 손을 잡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조선업이 트럼프 관세전쟁 속에서 한국이 미국 측 이해와 양보를 얻을 수 있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재무장관·미 무역대표(USTR) 한국에 ’엄지척‘ 들어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상목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USTR)를 만나 한미 2+2 통상 협의를 개최했다.

이날 협상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이는 한-미 조선업 협력과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 조선 협력은 미국 측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전해졌다”라며 “미국이 미국 내 스마트조선소 구축과 기술 이전, 조선 인력 양성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기여해줄 것으로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HD현대중공업이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체결한 선박 생산성 협상 및 기술 협력 양해각서(MOU)가 대표적인 예”라며 “이 MOU는 디지털 조선소 구축에 필요한 공정 자동화와 로봇, 인공지능(AI) 도입 및 생산인력 육성 협력 방안이 담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나 상선 및 군함 건조 협력에 관한 요청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 1위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에 미국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며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가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 조선소에 대한 인수 및 지분매입 등 현지 투자에 관심을 보여달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큰 만족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같은 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오늘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가졌다"며 "그들은 자기들의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고 우리는 그들이 이를 이행하는지 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같은 맥락이다.

안덕근 장관도 베선트 장관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조선 산업 협력 비전에 공감대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라며 "조선산업 협력에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와 인력 양성, 기술협력 등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미국 행정부가 목말라하는 조선산업 역량 강화에 잘 맞아들어갔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해군장성, 국내 조선업 현황 살피려 방한

한국 조선업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보여주듯 미국 해군장성이 이르면 이번주 한국을 방문해 국내 조선소를 시찰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은 이번주 한국을 찾아 국내 조선소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펠란 장관은 경남 거제, 울산 등에 있는 국내 조선소를 방문해 한미 간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방문 업체는 국내 대표 조선소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이 유력하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조선업 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세계 1위로 평가되는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해 왔다”라며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에 협력을 요청했으며 최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통화에도 한미 조선산업 협력을 논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이번 달 30일 방한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미국 함정 MRO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미국의 함정 MRO 시장은 연간 11조원, 함정 건조 시장은 연간 43조원 규모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펠란 장관이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막바지 수리 중인 미국 군수지원함 유콘함에 승선하고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이지스 구축함을 살필 가능성이 크다”라며 “한화오션은 지난달 13일 국내 최초로 수주한 미국 해군 함정 MRO 사업인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정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지스 구축함은 미국 해군 주력 함정 알레이버크급과 동급 함정으로 미국은 30년간 1600조원을 들여 100척이 넘는 함정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추고 있다”라며 “현재 이지스 구축함 2, 3번함을 짓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미 해군에 연간 5척의 동급 함정을 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 한국을 찾을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펠란 장관의 조선소 방문길에 동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길에 미국 최대 관심사인 한국 조선업 현장을 직접 둘러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고 있는 분야”라며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인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강력하게 원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해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신경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