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중국산 후판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이후 3분기 후판 가격 협상을 놓고 원가 부담과 수익성 개선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사진 = PIXABAY]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선박 제조에 사용되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가격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뜩이나 값싼 중국산 후판 등 철강제품 수입으로 경영난을 겪어온 철강업계는 최근 정부의 중국산 철강제품 관세부과에 환영을 표시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국산 제품을 더 구입할 것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는 중국산과 국산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산 제품 구입을 더 늘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최근 올해 3분기 후판 가격 결정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철강업계-조선업계, 후판 값 놓고 갈등 드러내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올해 3분기 후판 가격 결정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국내 철강업계 1위 포스코는 최근 국내 조선 3개 업체인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와 2분기 후판 가격 협상을 끝냈다. 양측은 후판 가격을 톤당 80만 원 수준으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제철은 조선 3사와 후판 가격을 톤당 8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에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을 놓고 줄다리를 벌이는 이유는 후판이 선박 제조 원가에서 20% 넘게 차지하는 핵심 철강제품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 가격은 지난 2023년 상반기 톤당 약 100만원 대까지 치솟았지만 중국산 저가 후판이 국내에 쏟아지면서 지난해 하반기에는 70만원대까지 떨어졌다“라며 ”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감소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렸지만 국내 철강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후판 값을 놓고 국내 조선업계의 원가 절감 의지와 철강업계의 수익성 향상이라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있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 정부, 중국산 저가 후판에 관세 철퇴 내려
이처럼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제품에 경영난을 겪으면서 정부가 해결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지난 2월 중국산 후판에 27.91~38.02%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국내에서 톤당 70만원대 중반이던 중국산 후판 가격이 최소 95만원으로 치솟게 됐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중국의 저가 후판 공급에 경영난을 겪어왔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2023년 대비 5.3% 증가한 137만9000톤으로 2016년(183만6000톤) 이후 최대 규모“라며 ”중국산 후판 가격도 한국산 후판보다 10~20만원 가량 저렴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철강업계는 조선업체에 후판을 먼저 공급하고 추후에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라며 ”이러다 보니 조선업계가 국산 후판외에 중국산 후판을 사용해 결국 국내 업체의 협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는 정부의 이번 관세 부과 결정으로 그동안 겪어온 경영난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 가격이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포스코는 이번 관세 부과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포스코는 지난해 후판 부문에서 1000억 원대 적자를 봤고 현대제철도 후판 부문 적자를 냈다“라고 설명했다.
◇3분기 후판가격 협상 우위 점하기 위한 철강-조선업계 갈등 재점화될 듯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정부의 중국산 후판 가격 관세 결정에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올해 3분기 후판 가격 협상을 놓고 또 한차례 실랑이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철강업계는 기대감에 가득찬 분위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가 최근 호황을 누리면서 선박 수주가 늘고 있어 이에 따른 후판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후판 수요 증가와 후판 가격 정상화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상에 따른 원가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 놓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산과 중국산 후판을 적절하게 활용해 선박 제조에 따른 원가 비중을 낮춰왔다”라며 “그러나 중국산 후판 가격이 관세 부과 결정으로 국산 후판과의 가격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등 선택지가 넓지 않다”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당장 3분기 후판가격 협상을 놓고 고심에 가득찬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가 정부의 중국산 반덤핑 관세 부과 발표 이후 보세구역을 활용하거나 중국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방안”이라며 “향후 철강업계와의 3분기 가격 협상을 놓고 지루한 신경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 중국에서 수입한 후판은 보세(관세 보류)구역으로 들여와 재수출하면 관세를 물지 않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보세구역 후판도 국내 선사에 공급하면 관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