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속에서 방산업, 철강업, 조선업이 오히려 기회를 맞이할 전망이다 [사진 = 백악관]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폭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방산업과 철강업, 그리고 조선업계가 오히려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미군이 주둔하는 해외에 주둔비 인상을 압박하고 있어 유럽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방위력 향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첨단 성능을 자랑하는 'K-방산' 등 국내 방산업체로서는 해외 사업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EU, 국방 재무장에 1258조원 투자 계획 마련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최근 유럽 국방을 강화하는 이른바 ‘재무장’에 1200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돈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더 이상 지켜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27개 EU 회원국이 자체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군사력 증강 방침은 최근 알려진 EU 집행위원회 계획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CNN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우르즐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5일(현지 시각) 이른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대 8000억유로(약 1258조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재무장 시대에 살고 있다"라며 "유럽 안보가 실제로 위협받고 있는지, 안보를 위해 유럽이 얼마나 더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이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 그동안 지나치게 의존해 현재 위기 상황을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EU는 최근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서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맞서 자체 군사력 증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등 북미와 유럽의 외교·안보 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향해 돈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국은 방어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유럽은 미국 지원 없이 러시아에 맞선 자체 방위력을 갖추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이른바 탈냉전 후 지난 30년 동안 군사력 증강에 별다른 노력을 펼치지 않아 방산 분야가 쇠퇴하는 모습“이라며 ”이를 보여주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여러 나라가 우크라이나에 각종 무기를 제공해 지금은 이에 따른 무기 부족 등 군사력 공백기를 맞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EU 27개국은 각자 경제 규모나 이해관계가 달라 국방비 분담금 등을 놓고 이견을 드러낼 수 있다"라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산 정책에 자체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EU 회원국은 현재 각국이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2%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지만 미국 위협에 맞서려면 국방비 지출 규모를 5%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한국 방산업계는 1200조원이 넘는 거대 유럽 방산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럽이 필요로 하는 방산 품목은 전차, 장갑차, 자주포, 다연장로켓시스템 같은 지상 장비부터 전투기, 호위함, 잠수함,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라며 ”국내 방산업계가 거대 유럽 방산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美 알래스카 LNG 사업에 한국에 ‘러브콜’
트럼프의 고강도 관세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업종이 철강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중국이 철강 생산을 대폭 줄일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값싼 중국산 철강재 수입으로 피해를 본 국내 철강업계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 관세 압박에 철강 생산을 얼마나 줄일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다만 중국이 대규모 철강 감산에 나설 경우 국내 철강업계 수익성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풀이했다.
철강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지난 5일 열린 중국의 형식상 최고 국가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한국의 국회 격)에서 철강 공급 과잉을 완화하기 위해 산업 구조 조정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NDRC가 철강 생산량 감소 계획 방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연간 5000만 톤의 조강(쇳물) 생산량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업은 그동안 중국 부동산 경기 호황에 힘입어 철강 생산량 증대에 속도를 높였지만 최근 부동산 등 내수경기 침체로 철강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중국 철강업계는 자국 내 남아도는 물량을 그동안 한국 등 해외에 싼값으로 판매했다"라고 풀이했다.
한국 등 각국 철강 업체들은 중국의 저가 철강 물량 공세에 시달려 왔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관세를 높여 자국 철강업계 보호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 베트남, 콜롬비아, 말레이시아는 올해 초 중국산 특정 철강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중국산 후판에 27.91%~38.02% 규모의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강판으로 조선업에 주로 쓰이는 철강재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 정부가 자국 철강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높이며 무역장벽을 강화하자 수출길이 막힌 중국이 철강 감산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관세 부과가 결정타"라고 설명했다.
이를 보여주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2일부터 철강 품목에 대해 예외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의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로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알래스카 주(州)정부가 주도하는 LNG 사업은 북극해 연안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송유관을 거쳐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 니키스키까지 날라 액화한 뒤 수요지로 나르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약 1300㎞ 길이 가스관을 건설하고 액화터미널 등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 이에 따란 초기 투자 규모만도 약 450억달러(약 64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LNG 발전 사업 추진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 철강업계는 LNG 파이프라인 건설 등에 참여할 계기를 마련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미국을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만들기 위해 관련 정책을 펼쳤다"라며"이를 위해 미국은 LNG 수출 허가 간소화, 해외 시장 개척, 셰일가스 개발 촉진 등으로 미국이 친환경 에너지 최강국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라고 설명했다.
◇20조원대 미국 해군 함정 MRO 사업 추진에 국내 조선업계 광폭행보
방산과 철강업계에 이어 조선업계도 트럼프 정책에 우리나라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분야로 등장했다.
미국 정부가 해군 등 노후화된 조선업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한국 기업 참여를 요구하는 분야가 바로 ‘유지·정비·보수(MRO)’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한국 참여를 요청하는 영역이 미 해군의 함정 MRO 시장"이라며 "이는 연간 약 2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 정부가 해군 MRO 분야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미국 해군력 강화가 주된 이유"라며 "미국이 중국과의 해군력 강화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미국 내 조선업 생태계가 붕괴해 함정 유지 보수 사업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트럼프 정부는 조선업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한국을 주된 사업파트너로 삼으려는 수순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미 해군 MRO 사업 진출에 도전장을 냈다.
업계에 따르면 HJ중공업은 미 해군 MRO 시장 진출을 위한 함정정비협약(MSRA) 체결 준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HJ중공업은 MSRA 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며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 MRO 사업에 참여하려면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NAVSUP)와 MSRA를 체결해야 하며 이는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산업체 지정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한다"라며 "기본 자격 심사, 현장 실사, 보안 평가 등을 통과하면 MRO 사업 참여 자격을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HJ중공업은 1974년 국내 첫 함정 전문 방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다양한 특수선 건조 및 MRO 사업 실적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형 수송함 독도함·마라도함, 해군 유도탄고속함 18척 성능개량 체계개발, 독도함·고속상륙정 MRO 사업 수주 등의 경험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이미 MSRA를 체결했다"라며 "HD현대중공업은 올해 본격적으로 함정 MRO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며 한화오션은 이미 2척을 수주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기에 HJ중공업까지 MSRA를 체결해 시장에 진출하면 국내 조선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