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영풍-고려아연 분쟁 (4) 승자의 저주와 중국의 승리로 끝나면 곤란

회사 경영권 놓고 가족간 갈등 비일비재
한미약품, 형제 VS 모녀 양상 내비쳐
롯데그룹, 신동주 VS 신동빈 회장 형제간 갈등 남아
금호그룹, 회장과 조카 간 분쟁 이어진 ‘조카의 난’ 일어나
경영권 놓고 벼랑끝 갈등 보이는 국내기업 지배구조 ‘재조명’
전고체 제조 기술 새로운 먹거리...자칫 중국에 넘어갈 수도

이코노미 트리뷴 승인 2024.10.11 17:22 의견 0

최근 국내 재계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모으는 기업이 영풍과 고려아연이다. 두 업체는 지난 70여 년간 굳건한 협력자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최근 두 회사가 경영권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동지에서 적’으로 바뀐 셈이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트리뷴은 두 업체가 오랜 협력을 뒤로하고 갈등 양상을 보이는 원인과 주요 현안, 그리고 향후 전망을 4회에 걸쳐 기획기사로 다룬다. [편집자주(註)]

국내 주요 기업들의 창업주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은 기업 지배구조와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진 = Pixabay]


국내 주요 기업을 살펴보면 회사 경영권을 놓고 분쟁으로 이어지는 게 자주 등장한다.

특히 창업주 가족이 회사를 놓고 서로 경쟁하고 심지어 소송을 하는 이른바 ‘골육상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미약품이다.

유한양행, 종근당, 대웅제약 등과 함께 국내 제약업계 ‘빅4’의 한 축인 한미약품은 창업자 두 아들과 아내와 딸이 서로 반목하는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를 두 형제가, 핵심 계열사 한미약품은 모녀와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소위 '3자 연합'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一家)가 경영권을 놓고 격돌했던 또 다른 곳은 롯데그룹이다.

신동주 전(前)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놓고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른바 ‘형제의 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된 후 약 10년 가까이 경영 복귀를 노리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6월“13년간 국내 5대 그룹 자리를 지킨 롯데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계 순위 6위에 머무르는 등 그룹 전체가 침체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신동빈 회장 경영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라며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며 동생 압박에 나섰다.

금호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에 맞서 조카 박철완 前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와 손잡고 삼촌과 경영권 분쟁을 펼치는 이른바 ‘조카의 난’이 벌어졌다.

박철완 전 상무는 올해 초 행동주의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에 권한을 위임하고 금호석유화학에 자사주 소각에 관한 정관을 변경하고 자사주를 100% 소각할 것을 제안하는 등 두 사람 간 경영권 분쟁은 진행형이다.

이처럼 회사 경영권 장악을 놓고 피를 나눈 가족, 혹은 친인척 간의 벼랑끝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고려아연과 영풍이 합류한 셈이다.

물론 고려아연과 영풍은 가족이 아니라 동업한 친구 집안 간에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최윤범 회장이 이끄는 고려아연이 2000년대 들어 영풍 지분을 매각하고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이 그 지분을 사들이며 영풍 지분율이 더 늘어났다. 이를 통해 장씨 일가는 영풍에서 경영권을 강화하고 고려아연 최대주주로 등장하며 양측 균형이 깨지며 경영권 분쟁이 시작했다.

양측 갈등이 커지면서 장형진 고문측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외국계 사모펀드들과 접촉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또한 두 경영자 간 유대감이 형성되지 못한 점도 분쟁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장형진 고문에 따르면 2세대까지 양측 교류가 활발했으나, 3세대에 접어들면서 유대감이 약해졌다는 얘기다.

이는 최윤범 회장이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양측 간 교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현진 고문은 78세, 최윤범 회장은 49세로 두 사람간의 세대 차이가 크다”며 “세대간 격차와 양측간 경영 전략과 소통 방식에서도 두 사람 간 거리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최 회장은 기존 제련 산업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적극 늘리려 했다”며 “이에 비해 장 고문은 기존 영풍과 고려아연이 추진해온 제련 등 전통적 경영방식을 고수하며 양측 갈등이 폭발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연간 매출액과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는 우량기업”이라며 “그런데 영풍 계열사 가운데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고려아연 경영은 최 씨측이, 그룹 지주사는 장씨 쪽이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쉽게 설명하면 그룹에서 돈은 최 씨가 벌고, 그룹 경영은 장 씨가 하는 구조이다 보니 최 씨측 불만이 그동안 누적됐다”고 강조했다.

◇ ‘한국 기업 지배구조’ 재조명...전고체 기술 해외 유출 우려도

한편 영풍-고려아연 갈등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또다시 조명되는 계기가 됐다.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자회사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모습이 기업 가치는 물론 주주 이익, 나아가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 상생을 해야 하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상대방을 비난하며 경영권을 한쪽은 지키고 다른 쪽은 빼앗으려는 모습”이라며 “이는 같은 가족사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크게 차이가 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고려아연-영풍 사례외에 한미약품도 ‘진흙탕 싸움’을 펼치고 있어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설상가상으로 고려아연은 국가 기간산업과 직결된 기업이어서 더욱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려아연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로 꼽히는 ‘전고체’ 제조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고체 기술은 한국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와 전기차를 생산하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노릴 만한 노하우다.

특히 중국계 자본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MBK파트너스가 이끄는 진영이 고려아연과의 싸움에서 이길 경우 전고체 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럴 경우 국내 경제와 산업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권 분쟁이 업계 경쟁력을 높이거나 문제점을 해결하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영풍-고려아연 간이 치킨게임은 자칫 두 기업 경쟁력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첨단 기술을 해외에 빼앗기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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