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침체로 국내 업체들이 충전기 사업에서 철수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이 공백을 메우며 국내 시장 장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 LG전자]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이른바 전기자동차 캐즘(Chasm, 일시적인 수요 정체) 장기화로 전기차 충전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이 하나둘씩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수익성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이와 맞물린 충전기 시장도 좀처럼 성장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내 업체가 충전기 사업에 머뭇거리고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의 시장 진출은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충전시장이 한국 업체 사업 정리로 생긴 빈 공백을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어부지리’ 양상이 빚어질 까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을 멀리 내다보고 사업을 육성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LG전자, 3년만에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서 물러나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ES(에코솔루션) 사업본부 산하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끝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지난 2022년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시작한 이후 3년만에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시장 성장 지연과 가격 중심 경쟁력이 심화된 데 따른 전략적인 리밸런싱(사업 재편)이라고 설명한다.
LG전자는 사업성이 약한 업종은 정리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장은 LG전자의 이번 결정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LG전자 전기차 충전기 사업은 순항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캐즘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충전기 시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LG전자가 이를 계속 육성할 것으로 여겨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듯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 매출 100조원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서 조(兆)단위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자신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처럼 LG전자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사업을 3년만에 끝내게 돼 이에 따른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 떠난 자리 중국업체가 독식 가능성 커져
전기차 충전기 업계는 이번 상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성장 잠재력이 아닌 당장 수익에만 눈길을 두면 향후 미래 먹거리를 포기하는 수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업체가 떠난 자리를 중국업체가 공략하는 여지를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LG그룹이 수익성 위주 업종으로 경영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조한 대목은 이해할 수 있다”라며 “그러나 미래 성장잠재력을 등한시 하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LG전자외에 SK그룹에서 전기차 충전 사업을 펼치는 SK시그넷도 계속된 영업적자를 기록해 올해 들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라고 “이밖에 한화그룹 한화솔루션 큐셀부문도 전기차 충전기 1만6000여 기를 매각하는 절차를 밟는 등 관련 업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이처럼 전기차 충전 사업이 어려움을 겪어 국내 기업이 시장에서 철수하는 출구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이와 같은 결정이 자칫 역풍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기업의 업종 철수에 중국 업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는 전기차 캐즘을 거론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반 택시가 거의 대부분 전기차로 운행할 만큼 전기차는 물론 전기차 충전 시장이 막강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중국 업체들이 국내 전기차 충전시장 진출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이다. 이 업체는 5분 충전해 400km를 주행할 수 있는 1MW급 초고속 충전기를 출시해 업계 주목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BYD는 전기차는 물론 전기차 충전기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며 “한국 전기차 시장의 최근 동향은 BYD에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중국은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전기차 시장을 육성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전기차 등 완성차는 물론 충전기 등 주변장치 시장 인프라가 막각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전기차 충전기 시장은 대표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중국업체와 중국정부의 협력에 맞서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도 맞대응 전략을 펼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420만대로 정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충전 인프라 구축 지원은 부진한 점도 국내 전기차 시장 육성에 지장을 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