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타결에도 미국의 ‘투자 백지수표’ 요구와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가 겹치며 대미 투자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 = 대통령실]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가뜩이나 거액 투자 요구에 비자 논란까지...’
한국과 미국이 지난 7월말 관세협상을 타결했지만 우리 국민 단속 등 비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향후 대미(對美)투자에 난기류가 예상된다.
한미 양국은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돈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처럼 한국에도 이른바 ‘투자 백지 수표’를 요구하고 있어 한미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자세에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투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이민당국이 우리 국민 300여명을 불법 체류 단속으로 구금한 점도 양국 협력 기조에 먹구름을 끼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낙후된 미국 제조업 인프라를 끌어올리려면 이에 따른 한국 기능 인력이 미국 현장에 대거 투입돼야 한다”라며 “그러나 미국 정부는 비자 문제에 원칙적인 입장만 강조해 대미 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라고 풀이했다.
◇ 美, 비자 이슈에도 ‘일본식 투자 계획’ 요구해 파장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관세 협상 타결에 따른 투자 패키지 방식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최근 일본과 합의한 사례를 들어 자국이 원하는 곳과 시점, 방식으로 투자해달라는 이른바 ‘백지수표’를 달라고 하는 모습”이라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풀이했다.
그는 “3500억달러는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라며 “정부는 대미 직접 투자는 5% 정도로 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보증으로 채워 실질 부담을 낮추겠다는 구상을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히 미국이 미-일 투자 업무협약(MOU) 합의대로 투자 이익의 최대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것을 명문화하자는 입장”이라며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런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풀이했다.
◇ 농산물 분야, 비관세 장벽 해소 요구 거세져
미국은 또한 한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농산물 분야에서도 사실상 시장 추가 개방 압박을 넣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한국 정부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관세 협상 타결 때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양국 협력 강화'를 약속했으니 이에 따른 약속을 지키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1993년 신청한 사과 검역이 20년 넘도록 현재 8단계 중 2단계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 착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개정 요구를 드러내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한국에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이 최근 일본산 자동차 관세율을 15% 이하로 내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라며 “미국 정부는 한국이 농산물 분야에서도 큰 양보를 해야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히는 등 한국 시장 압박이 갈수록 강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美정부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로 대미 투자 불확실성 더 커져
이처럼 관세협상 타결에 따른 투자 이행을 놓고 미국과 한국이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낸 가운데 최근 불거진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향후 대미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 키운 악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관 산업장관은 11일 미국으로 출국해 대미 투자 이견(異見) 조율과 비자 문제 등 양국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김정관 장관이 미국 방문 기간에 비자 제도 개선 요구 등 우리 입장을 강하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특히 우리 정부가 대미 투자 원칙을 존중하지만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작고 있어 김 장관의 방미 기간에 일본식 투자 MOU 서명 등 급속한 사태 진전이 있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도 단호하다.
이를 보여주듯 이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비자 문제와 관련해 "현재 상태라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지적한 점도 미국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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