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5일(현지시간)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거의 압승을 거두면서 한국경제 호(號)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과거 행정부때에는 중국 등 대미(對美)무역흑자 규모가 큰 일부 국가를 정조준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내년에 시작되면 이른바 ‘보편관세’ 정책을 내세워 교역국을 대상으로 더 높은 무역장벽을 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관세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 보편적인 기본관세를 비롯해 ◇60% 대중국 관세 ◇ 교역국과 같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상호주의 관세 부과 등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경쟁하는 일부 수출 품목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수는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태풍에서 어느 교역국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특히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액 63조원 줄어들 수도
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보편적 기본관세 정책이 시행하면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달러(약 63조원) 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무역의존도가 큰 한국은 교역국 보호무역 조치에 취약한 상황”이라며 “올해 역대 최고의 대미(對美) 수출액을 기록한 우리로서는 자칫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가 역대 최대(444억달러)였다.
올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1~9월에 399억달러를 기록해 또 다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국익 중심주의에 함몰된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에 대한 무역 압박이 메가톤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며 “중국 완제품의 대미 수출이 줄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에도 직·간접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풀이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 수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뜻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보호무역 정책에 국내 주요 산업 타격 불가피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국내 주요 업종인 반도체, 자동차, 전기차배터리, 철강 등 주요산업에 미칠 악영향도 클 전망이다.
특히 한국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산업은 이른바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이른바 ‘칩스법’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2년 제정한 이른바 칩스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000만 달러의 보조금과 각종 세제 혜택을 받기로 돼 있었다.
또한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州) 테일러시(市)에 반도체 시설을 세울 예정이다. 추가로 오는 2030년까지 총 약 4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에 최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그룹 차원에서 미국 내 2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라 보조금 대신 높은 관세를 부과해 해외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압박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통해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 성장을 적극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자동차 산업에도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한국의 대미무역에서 자동차 부문이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는 반도체에 이어 한국의 2위 대미 수출품이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현지 생산 차량에만 혜택을 주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상용 리스 판매로 활로를 뚫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외국산 자동차 수입 관행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무너뜨린다고 믿고 있어 자동차 산업에 대한 무역규제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전기차 지원을 줄이고 일반 화석연료 자동차에 대한 지원을 내비친 점도 전기차 생산이 많은 한국으로서는 악재”라고 풀이했다.
배터리 산업도 초긴장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MAGA'의 핵심은 미국 제조업 부활이다.
이는 2차전지 등 첨단 배터리 시장에도 암운을 드리우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전방 산업인 전기차 판매 보조금이 줄고 2차전지 생산에 지원되는 세액공제까지 줄어들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2차전지 기업 생산성과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뜩이나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국내 배터리 업계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제조업 정책으로 국내 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철강시장에서 중국업체의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수입산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국가별 수입 쿼터 축소 등이 예상된다”며 “이를 통해 트럼프는 외국산 철강품목에 대한 무역 장벽을 더 높일 것”이라고 점쳤다.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트럼프 차기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지원 축소와 전통 에너지 공급 확대를 약속해 정유업계는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며 내다봤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의 복귀로 결국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계획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향후 미국과의 교역 등이 오랜 기간 불투명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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