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연말연시를 앞둔 한국경제가 이른바 ‘4각 파도’에 직면했다.
4각 파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앞으로 펼칠 정책인 이른바 ‘트럼프노믹스’를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동, 환율급등과 소비침체 등을 일컫는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트럼프 당선자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미국우선주의’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경제를 뒤흔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처럼 대외변수가 커진 가운데 국내에는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이에 따른 탄핵 등 정치적 요인으로 경제가 타격을 입은 가운데 환율 급등과 내수부진 등 소비침체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연말연시를 앞두고 특수를 기대해온 내수 경기에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 태풍 거셀 듯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내년에 출범하면 미국은 중국을 비롯한 교역국에 고액의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전망이다.
내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자는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에 ‘100% 관세 부과’라는 메가톤급 카드를 내밀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 계정에서 “새로운 자체 통화든, 기존 통화든 브릭스(BRICs)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이 주축이 된 비(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다. 브릭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맞서 ‘신개발은행’을 공동 설립하고 자국 통화 결제를 늘려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 체제에서 조금씩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고율 관세를 무기로 내세워 달러 위상이 약화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브릭스외에 다른 교역국에도 관세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 대선 기간에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며 “이와 같은 미국의 관세 만능주의는 모든 교역국에도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그는 “한국은 대미 무역 흑자가 지난해 445억 달러에 이르고 미국이 최근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도 트럼프 차기 행정부 전략에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를 위해 논란이 이어지는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해 반도체 보조금, 조선·원전 협력 등 한미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상해 한미 양국이 상호혜익을 얻을 수 있는 해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비상계엄 소동에 따른 국가신인도 하락 우려 커져
계엄령 파문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됐지만 이에 따른 국가신인도 하락 등 외생변수도 걱정이라는 연구기관 분속도 나온다.
정부의 경제정책 싱크탱크 중 하나인 산업연구원은 “탄핵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탄핵 사태로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해 경제적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환율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맺은 외환스왑 거래 기한과 한도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금융시장은 비상계엄 선언 및 해제, 탄핵 불확실성 여파로 주가 급락세와 환율 상승세가 나타나는 등 불안정세가 이어지고 있다”이라며 “대외신인도를 반영하는 한국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비상계엄 여파로 소폭 상승한 모습이지만 아직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흐름을 보이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사가 AA, 무디스사는 Aa2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연구원 관계자는 “국제신용기관이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변경하지 않고 있지만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환율 급등 여파 만만치 않아
비상계엄 사태 촉발로 가장 타격을 입은 영역 가운데 하나가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때 1440원까지 치솟은 후 1430원 선을 오르내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달 14일 현재 환율은 1436.20원으로 올해 연평균 환율(하나은행 매매기준율·1362.30원)보다 무려 73.9원 오른 셈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환율을 1300원대로 예상한 유통업체들은 사업 계획을 급히 다시 짜야 하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현재 환율 상승 여파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후부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품목별로 차이가 있으나 가격이 평균 3∼5%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에 따라 수입처 다변화, 결제 화폐 변경 등으로 비상 대응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외식업계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원재료값 상승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가운데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졌다”며 “이에 따라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여행업계도 초긴장 상태다.
고(高)환율 여파로 예약이 당장 대규모 취소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고환율이 지속하면 해외여행 수요가 위축되는 등 여파가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환율이 계속 오르면 소비자가 여행을 미루거나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여행지를 바꾸는 등 여행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매판매지수 줄줄이 내림세 등 내수 경기 타격 심해
한국경제 취약성을 드러내는 내수 경기는 고물가·고금리로 실질 가계 소득이 낮아져 침체가 올해에도 두드려졌다.
한 예로 통계청이 지난달 공개한 올해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2020년=100)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1.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0.2%) 이래 10개 분기째 감소세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록이다.
여행과 외식 등이 떠받치는 서비스 소비도 1.0% 증가에 그쳤다. 지난 2021년 1분기(0.7%) 이후 14개 분기 만에 가장 낮다.
업태별로 보면 백화점의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21.6으로 2021년 3분기(112.5) 이래 최저치다.
대형마트(98.0)는 지난해 3분기 이래 4개 분기 연속 100을 밑돌았고 면세점(80.0)도 지난해 1분기 이후 줄곧 70∼80대에 머물렀다. 1년째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수준도 회복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내수기업 620개 사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의 매출액이 2020년(-4.2%)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소비 심리가 더 얼어붙을까 봐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우려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6년 10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정치적인 격변 기간 소매판매액지수는 97.0(2016년 4분기)에서 89.7(2017년 1분기)로 뚝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하나의 내수 경기 지표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2016년 10월 102.7에서 이듬해 1월 93.3까지 추락했다가 헌재의 파면 선고 뒤인 4월에야 101.8로 회복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100 이상이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뜻이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소상공인들은 이미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을 체감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개인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전국 소상공인 1천63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국내 기업은 내년이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간한 내년 소매유통 부문 전망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부담 증가와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면서 소매유통업의 실적 저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일회계법인도 내년 경제전망보고서에서 금리인하와 수출의 낙수효과로 일부 내수 회복이 기대되지만, 회복 강도가 기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특히 소비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민간 소비가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추세를 큰 폭으로 이탈했다며 잠재 성장력 둔화와 가계부채, 고령화 등으로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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