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MZ세대(20~40대 연령층)가 최근 국내 중고자동차 시장에서 ’큰 손‘으로 등장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일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실거래 대수는 234만6267대로 신차 등록 대수(163만8506대)와 비교해 약 1.4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신차 판매량이 2023년에 비해 6.5% 줄어든 반면 중고차 거래는 0.7% 감소하는 데 그친 성적표다.
특히 자동차 주요 구매 계층 가운데 하나인 MZ세대의 중고차 선호도는 두드러지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이처럼 MZ세대를 핵심축으로 하는 소비 트렌드를 흔히 ‘듀프(Dupe)’라고 부른다. 듀프는 ‘Duplicate(복제)'와 'Proof(증명)'의 합성어다. 즉 듀프는 값비싼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가성비와 품질, 효율성을 따져 합리적인 소비활동을 펼치는 것을 뜻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MZ세대는 명품 등 고가 제품 구매에 적극적인 ‘플렉스’ 유행을 널리 알린 계층“이라며 ”그러나 최근에는 MZ세대가 값비싼 명품 대신 저가 대체품을 찾는 ‘듀프(dupe) 소비’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신차급 차량 판매 늘어
듀프 소비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중고차 시장에서 신차급 차량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고차 플랫폼 리본카 관계자는 ”지난해 연식 5년 미만·주행거리 1만km 이하인 이른바 '신차급 중고차' 판매량은 2023년과 비교해 29% 증가했다“며 ”특히 신차급 중고차는 리본카 전체 판매량의 9%를 차지해 실용적이고 품질을 중시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밝혔다.
그는 ”경기침체에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과 가치를 유지한 중고품으로 소비자들이 눈길을 돌린 데 따른 결과“라고 풀이했다.
◇자동차-전자제품 등 고가상품 시장에서 듀프소비 두드러져
이른바 ’듀프 소비‘는 자동차 시장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자제품 등 다른 고가 상품 시장에서도 돋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크리스토퍼 르메르, JW앤더슨, 질샌더, 마르니에 이어 최근 지방시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등과 손잡고 한정판 제품을 내놨다.
유니클로의 이와 같은 ’튀는 마케팅‘에 힘입어 유니클로가 고가 브랜드와 협업해 내놓은 한정판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고객이 매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풍경도 빚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가 내놓은 제품은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만 명품 이미지를 풍기면서 가격은 저렴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질세라 LG생활건강은 지난해 4월 생활용품 브랜드 ‘온더바디’의 세컨드 브랜드 ‘퓨어더마’를 출시한 데 이어 7월에는 저가 매장 다이소 전용 '케어존' 제품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은 물론 무선 이어폰과 스마트워치 등에도 유명 브랜드에서 착안한 제품이 쏟아지며 듀프 소비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듀프 소비 추세 갈수록 위력 발휘하는 이유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철학에 빠져 현재 행복을 가장 중요시하는 소비 행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플렉스 문화’ 가 물러나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듀프 소비가 갈수록 맹위를 떨치는 것은 고물가로 인한 수입 감소와 소비 위축에 따른 것이다.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져 과시형 소비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비싼 명품을 사기보다는 비슷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대체 상품인 듀프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보다는 디자인과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가 낳은 소비 추세인 듀프 소비는 기존 패션과 뷰티 등 미용제품은 물론 가전제품, 음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관련 업계도 이들의 취향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는 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듀프 제품, 특허권 침해 등 문제점 없나
듀프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고가 브랜드 제품 디자인과 기능을 약간 변형한 저가 제품을 뜻한다.
그러나 듀프와 ‘짝퉁(위조품)’에는 차이가 있다.
짝퉁은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 등 외양을 그대로 베껴 유명 브랜드 마크를 부착한 위조품이다.
이에 비해 듀프는 유명 브랜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정품이다.
이에 따라 듀프는 상표권 도용이나 특허권 침해 등 법적 문제는 없지만 ‘명품 유사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짝퉁은 명품 브랜드의 로고, 포장, 제품 외형을 그대로 복제해 마치 명품 제품처럼 속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이라며 ”이에 비해 듀프는 고가 명품 브랜드 스타일이나 기능을 본떠 만든 저렴한 대체품이지만 브랜드 이름, 로고, 패키지 디자인 등 핵심 요인을 복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듀프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작돼 법적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듀프 제품을 두고 지식재산권 침해를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지식재산권은 특허권·디자인권·상표권 등이 포함된다. 특허권은 어떤 제품을 개발한 개인이나 회사가 일정 기간 해당 제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할 권리다. 디자인권은 특정 디자인에 대한 독점적 사용 권리를, 상표권은 브랜드명이나 로고에 대한 독점적 사용 권리를 뜻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식재산권 보호가 중요한 이유는 원작자 권리를 인정해줘야 앞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디자인도 활발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듀프가 명품의 일부에서 상품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가 합법적인 모방인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듀프 제품이 인기를 얻으면 기존 명품 등의 판매가 부진하고 다른 업체의 베끼기 경쟁으로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