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통상협상이 연기된 가운데, 한국 정부는 10대 그룹의 1,0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며 조선·LNG 등 미국 관심 산업 분야 협력도 병행할 방침이다. [사진 = 백악관]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발(發) 관세전쟁에 따른 한미 간 '2+2 통상협상'이 미뤄지면서 양국 협상에 이상 기류가 감돌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국내 10대 그룹이 추진 중인 대미(對美) 투자계획을 토대로 미국측과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한국기업의 미국 투자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와 미국측과의 협상 지렛대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 미국, 통상협상 앞두고 회의 무산시켜 추측 무성
애초 오는 25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한미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협의'가 갑자기 취소돼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기획 재정부는 24일 "미국과 예정됐던 25일 '2+2협상'은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워싱턴DC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대기 중이었고 출국까지는 1시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미국측으로부터 협상 연기 소식이 전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이 베선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라며 “이에 따라 양국은 빠른 시일 내 다시 일정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양국 장관이 일정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양국 통상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는 미국 측이 한국 정부의 물밑 제안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 아닌 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 일본은 미국과 관세협상 마무리 했는데..우리는 난항
일본이 미국과 상호관세·자동차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등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우리 정부는 미국 측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60조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약속하고 쌀 등 농산물 시장을 일부 개방하는 대가로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레드라인'으로 정한 소고기·쌀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대규모 대미 펀드 조성에 미국이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애초 25일로 예정됐던 한미 고위급 '2+2 통상협의'가 미국 측 사정으로 취소돼 상호관세 부과일인 8월 1일 이전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기에 시간이 별로 없다”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이 미일관세 협상에서 쌀 등 농산물 분야에서 크게 양보하고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해 관세 인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안다”라며 “일본의 협상 타결로 한국은 농산물, 디지털, 자동차 등 주요 쟁점 분야에서 양보하고 지킬 것을 정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 한국, 미국에 1000억달러 투자 카드 ‘만지작’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국내 10대 그룹과 함께 미국에 1000억달러(약 137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계획을 세워 미국 정부에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해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HD현대 등 국내 10대 그룹과 협의해 미국 투자 금액을 취합했고 현재까지 기업으로부터 약속 받은 투자 금액은 1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산업·수출 구조가 유사한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7조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제안해 25%로 예고됐던 상호관세를 15%로 낮췄다”라며 “이런 가운데 미국측의 협상 연기 태도는 1000억달러 투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일본에 비해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 입장에서는 1000억달러가 작은 금액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등 다른 협상 카드도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한국, 대미(對美) 투자외에 조선·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도 추진할 듯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선분야 협력과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사업 참여 등 미국의 주요 관심사도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이미 현대차 조지아 공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기지 등 미국에 투자해 미국 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라며 “이와 함께 조선 등 대미 산업 협력 분야를 묶어 제시해 미국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이를 보여주듯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지렛대로 관심을 모으는 조선 분야에서 한화그룹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통상 대표단은 한화오션에 향후 필리조선소 운영계획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과의 시너지 창출 효과 등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