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 앞두고 K-배터리·완성차 업계가 신제품·시장 다변화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 = 현대자동차]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10월 이후 사라질 전기자동차 구매 보조금 해법을 찾아라‘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 배터리업계와 자동차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할 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행정부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오는 9월 30일(현지시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물론 전기차 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기차 업계는 보조금 폐지에 따른 차량 판매 감소 가능성에 속앓이를 하는 가운데 배터리 업계도 제품 판매가 크게 줄어들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 ’K-배터리‘, 신제품과 시장 다변화에 가속페달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주요 배터리 업체는 보조금 폐지에 따른 해법 마련에 들어갔다.
이 3개 업체는 다음달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올리는 북미 최대 청정에너지 전시회 'RE+ 2025'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 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RE+ 2025에서 처음으로 각형 ESS용 LFP(리튬인산철)를 선보여 배터리 폼팩터(제품 형태)를 다양화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현지에서 파우치형 ESS용 LFP 배터리만 현재 양산하고 있다”라며 “이는 파우치형이 가볍고 열관리가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LG가 이번에 미국 시장에 내놓을 각형 배터리는 알루미늄 사각 캔에 전극이 들어가는 형태로 외부 충격에 강하고 안전성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이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현지에 각형과 파우치형 등을 모두 선보여 급성장하는 북미 ESS 시장을 공략할 전략을 세웠다”라고 풀이했다.
이에 질세라 삼성SDI는 ESS 배터리 '삼성 배터리 박스'(SBB)의 2.0 버전을 이번 전시회에 처음 공개한다.
SBB 2.0은 LFP 배터리 제품으로 기존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 기반으로 양산되고 있는 SBB 1.0, 1.5 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여기에 NCA 배터리 기반 최신 업그레이드 제품 'SBB 1.7' 제품도 전시해 삼원계와 LFP를 아우르는 ESS 배터리 라인업(제품군)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점쳐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 ESS 시장은 IRA 종료 임박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국내 배터리 업체에 유망한 신시장”이라고 덧붙였다.
SK온은 최근 미국 조지아 단독공장 'SK 배터리 아메리카'(SKBA)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 축소에 대응해 전기차용 배터리는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 공장에서 만들고 단독 공장에서 ESS용 라인 생산 비중을 늘려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SK온은 랙(Rack) 단위 보다 더 작은 모듈 단위로 설계해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유연하게 구성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차별화 전략을 마련했다.
미국의 ESS 시장은 노후화된 인프라 교체 수요와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데이터센터 구축에 따른 신규 전력망 건설 등으로 호황을 누릴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ESS 시장은 올해 36억8000만달러(약 5조1214억원)에서 2030년 50억9000만달러(약 7조837억원) 규모로 연평균 6.7%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ESS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에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 현대차-기아,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해법 모색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임박에 국내 자동차 업계도 해법 마련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주력해왔지만 이제 유럽 등 해외 무대를 더 넓혀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품목 관세에 보조금 혜택이 사라지면 미국에서 전기차 사업에 따른 경쟁력 강화와 수출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라고 평가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가 현실화하면 현대자동차그룹의 미 현지 전기차 판매량이 연간 최대 4만5828대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자료를 내놨다. 이는 연간 약 3조원 가량 차량 매출이 감소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유럽 자동차 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은 탄소 배출 규제 등 친환경 정책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전기차 수요가 점차 커질 것으로 보여 미국 수출 둔화를 상쇄할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달 한국의 자동차 수출 실적 가운데 EU(7억1300만 달러)가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해 향후 시장 확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는 올 3분기에 대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아이오닉9’ 출시에 이어 9월에는 B세그먼트(소형차) ‘아이오닉2(가칭)’을 유럽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현대차는 올 4분기에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6’를 유럽 시장에 출시한다.
이에 질세라 기아는 지난해 출시한 소형 전기 SUV ‘EV3’에 이어 준중형 전기 세단 ‘EV4’와 준중형 전기 SUV ‘EV5’ 등을 연이어 출시해 유럽 전기차 판매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 전기차 배터리 아닌 드론과 로봇이 향후 ‘성장동력’될 수도
국내 배터리업계와 자동차 업계가 미국 정책에 해법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전기차를 넘어 드론(Drone:무인항공기)과 로봇 등 새로운 시장에서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기 진단과 극복 전략: 미국 감세법(OBBBA) 영향과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한국 배터리 업계가 유럽 시장에서 고전 중인 이유를 '보조금 폐지·축소→전기차 판매 부진→중저가 배터리 수요 상대적 증가→중국 기업 점유율 상승'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햇다.
그는 또 미국에서 최근 통과된 감세법에 따라 올해 10월부터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폐지돼 미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따라 그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 군사용 드론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등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군사용 드론 시장은 2023년 141억달러(약 20조원)에서 해마다 13% 성장해 2032년 472억달러(약 6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도 향후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릴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고령화 등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해결할 것”이라며 “휴머노이드의 학습·추론 능력이 갈수록 향상될 것이며 이에 따른 전력 소모가 급증해 고성능 배터리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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