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직후, SMR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클레이 셀 엑스-에너지 CEO, 레이 포코우리 AWS 에너지정책 관리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순. [사진 = 두산에너빌리티]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30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 간 원전 협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참여할 길이 열렸지만, 기술 종속과 협상 구조를 둘러싼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체코 원전 ‘굴욕 계약’…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한국 원전 산업은 애초에 미국으로부터 원천기술을 이전받으며 출발했다. 1990년대 이후 독자 모델을 발전시켰지만, 여전히 미국의 승인 없이는 해외 수출에 제약을 받는 구조였다.

지난해 체코 원전 수출 과정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원천기술 권리를 보유한 미국 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에 휘말리며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두 가지 핵심 조항이 담겼다.

첫째, 한국은 원전 1기당 약 1조원을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해야 하며, 상당 부분이 물품 구매와 라이선스 비용으로 지출된다.

둘째, 한국은 북미와 유럽 등 서구 시장에 진출할 수 없고, 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에 한정된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한국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였다고 지적한다.

신흥국 시장은 이미 러시아와 중국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한국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이번 계약이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정치적 개입 속에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사업에 참여했을 당시,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지 않은 국가와 협력했다는 점이 워싱턴의 불만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어 2022년 이집트 원전 사업에서는 러시아가 주도한 프로젝트에 한수원이 일부 참여했는데, 당시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로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최고조였던 시기였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민감한 시점에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처럼 비춰지며 미국의 강한 경계심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전을 동맹국조차 제3국에 마음대로 수출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체코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그 결과 한국이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미국, 한국을 ‘견제’하면서도 유일한 파트너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통제 속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은 2030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10기를 건설하고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제조 역량은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는 조지아주 보글 원전 프로젝트에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납품했고, SK와 HD현대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와 SMR 협력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는 유럽 내 경쟁자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이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 합작법인 협상과 차세대 SMR, 한국 원전의 향방은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해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원자력 규제위원회(NRC)의 라이선스를 외국 기업이 단독으로 취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JV 설립이 유일한 진출 경로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지분 구조와 원전 모델 선택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과 한국형 APR-1400 가운데 어떤 모델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의 참여 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APR-1400은 1400MW급 출력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EPC(설계·조달·건설) 비용 덕분에 경쟁력이 높아, 발주사들의 선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JV 지분율에 따라 웨스팅하우스가 과실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궁극적으로 한국 원전산업의 돌파구는 차세대 SMR에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대형 원전은 구조적으로 미국의 원천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SMR은 한국이 독자 기술로 개발을 진행 중이어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글로벌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SMR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면, 에너지 전환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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