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 무죄 확정 후 테슬라와 23조원대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하며 한미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해 방미, ‘뉴삼성’ 행보를 본격화했다.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지난 10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트를 모두 털어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시 글로벌 광폭 행보에 나선다.
이달 17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10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 족쇄에서 벗어난 이재용 회장이 최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로부터 무려 23조원대에 이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따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에 머물지 않고 최근 한국과 미국이 벌이고 있는 관세 협상의 ‘해결사’가 되기 위해 워싱턴행 비행기에 오르는 등 측면 지원에 전격 나섰다.
◇ 삼성전자, TSMC 제치고 테슬라와 23조 사업 손잡아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165억달러(약 22조8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 이는 파운드리 부문에서 삼성전자가 체결한 단일 계약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그동안 수 조원대 적자를 보인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이 이번 계약을 통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이 이달 24일부터 오는 2033년 12월 31일까지 8년에 걸친 장기 계약”이라며 “특히 이번 파운드리 계약은 지난해 삼성전자 총 매출액 300조8709억원의 7.6%에 해당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단일 고객 기준 최대급 계약”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애초 공시에서 계약 상대방을 밝히지 않았다”라며 “그러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州) 대형 신공장이 테슬라 차세대 AI6 칩 생산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며 세부 내용을 공개해 세상에 알려졌다”라고 설명했다.
머스크는 "테슬라가 생산 효율성 극대화를 돕는 것을 허용하기로 삼성이 동의했다"라며 AI6의 성공적 양산을 위해 양사가 밀접한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테슬라는 삼성 테일러 공장을 살펴보며 AI6 양산을 위한 점검 등을 실시할 전망이다.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에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담기 위해 AI4·AI5·AI6 등 자율주행용 AI(인공지능)칩을 개발해 차량에 탑재하고 있다.
AI4는 현재 삼성 파운드리 평택공장에서 양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설계를 마친 AI5칩은 대만 반도체업체 TSMC가 초기에 대만에서 생산한 이후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양산할 예정이다.
TSMC는 AI5에 3나노 공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가장 최신형 칩인 AI6는 내년에 가동될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 2나노(㎚·1㎚=10억분의 1m) 첨단 공정을 활용해 만들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AI4에 이어 최신 AI6까지 삼성 파운드리에 맡기는 것은 수율(완성품 가운데 합격품 비율)이나 성능 면에서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라고 풀이했다.
그는 “흔히 AI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4나노 이하 첨단 공정 수율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온 가운데 추후 또 다른 빅테크 수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덧붙였다.
◇ 이 회장, 초 읽기 들어간 한미 관세 협상 지원 사격 위해 美로 출국
이 회장은 또한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세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는 이 회장이 17일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12일 만에 이뤄진 대외 활동이다. 이 회장은 29일 오후 3시 50분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이번 방문의 일차적 이유는 주요 협력업체와 글로벌 비즈니스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신사업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8월 1일 상호관세 발효를 불과 사흘 앞둔 가운데 우리 측 협상 해법으로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를 비롯해 AI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제안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도 미국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기는 등 투자 유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이 회장의 방미(訪美)가 한미 관세 협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특히 테슬라가 23조원대 대규모 사업을 삼성전자에 발주한 점도 미국 정부가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 이 회장, 사법 위기 모두 극복하면서 ‘뉴 삼성’ 본궤도
이 회장의 이번 방미는 지난 17일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이 회장이 그동안 그려온 ‘뉴 삼성’이 본격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이나 외부 일정 없이 경영 활동에 주력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지난 24일 비공개로 이재명 대통령과 만찬을 했고 이를 계기로 관세 협상과 관련한 대미 투자 전략에 대해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눈 것에 따른 후속 조치일 수도 있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애초 이 회장이 이달 말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리는 글로벌 테크 최고경영자(CEO) 모임 ‘구글 캠프’에 참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라며 “그러나 급박하게 진행되는 관세협상에서 이 회장이 역할을 하기 위해 첫 번째 해외 출장 일정으로 미국을 정했을 가능성도 크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사법 논란에서 완전 자유로워진 이후 테슬라와 계약하고 미국으로 출국해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뉴삼성' 비전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여기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그동안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최근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는 등 위기 국면을 맞았다”라며 “한 예로 삼성전자는 최근 2분기 잠정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4조6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이 가운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이 1조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분석한다”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실적이 부진한 데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부문에서 적자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 대만 TSMC와 격차가 벌어지고 후발 업체 추격이 거센 점도 뒷받침한다.
한 예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 67.6%, 삼성전자 7.7%였다. 중국 SMIC는 6%로 삼성전자를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또한 올해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난 것은 이 회장이 지난 10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는 동안 파운드리 사업을 비롯한 반도체 부문이 부진을 거듭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적자 늪에 빠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이 테슬라 등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해 도약의 신호탄을 올렸다“라며 이제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서 주도권 전쟁을 감아쥐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