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었다. [사진 = 다카이치 사나에 X(구 트위터)]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여자 아베’의 등장으로 일본과 미국이 합의한 대미 투자 5500억달러(약 775조원) 합의가 자칫 재협상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전(前) 일본 경제안보담당상(경제안보상)이 4일 치러진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첫 여성 총재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민당 창당 7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재가 등장하면서 일본 정계에도 두터운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 깨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약 열흘 뒤 국회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로 집권당 총재가 총리로 선출되는 구조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의 미국과의 협력 기조다.
그는 극우성향을 띠고 있지만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출마 후보 가운에 일본의 대미 투자 합의에 유일하게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 분석가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글로벌 관세 전쟁에서 일본의 국익을 강조하는 행보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 다카이치 예상 깨고 집권당 총재 거머줘
4일 외신에 따르면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4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치러진 제29대 총재 선거 결선 투표에서 185표를 얻어 강력한 경쟁자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156표)을 29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5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 1차 투표에서 183표를 획득해 1위에 올랐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64표를 얻어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정치 분석가는 “애초 이번 선거 판세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선두를 달리고 다카이치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에게 추격당하는 것으로 분석했지만 실제 결과는 다카이치 총재의 승리로 끝났다”라며 “다카이치가 보수 성향 의원의 표를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특히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다카이치 총재를 지지하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한 점도 주효했다”라고 풀이했다.
강경 보수이자 극우 성향인 다카이치의 등장으로 향후 한일 관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신임 다카이치 총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 그동안 협력 관계를 이어온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시마네현이 개최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보내는 일본 정부 대표 인사의 격을 기존 차관급에서 장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또 다른 정치 분석가는 “다카이치가 이번 선거 기간에 북한, 중국, 러시아의 접근을 염두에 둔 듯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라며 “일본 총리가 되면 그동안 해온 극우 정치 행보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듯”이라고 내다봤다.
◇ 다카이치 “일본 국익을 해치는 불평등 부분 있으면 확실하게 얘기해야”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신임 총재의 등장으로 미국과의 협력 관계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그는 총재 산거 과정에서 출마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대미투자 합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이 합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이 투자 종목을 결정하고 일본은 45일 이내 자금을 송금해야 한다.
또한 투자 수익 배분 비율이 미국 90%, 일본 10%로 정해져 일본 국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는 9월 28일 후지TV ‘일요보도’ 토론에 참석해 5500억달러 미국 투자 합의와 관련해 “실행 과정에서 일본 이익에 반하는 매우 불평등한 부분이 확인되면 확실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재협상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다시 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향후 향후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치 분석가는 “다카이치 신임 총재의 대미 관세 합의 의중은 이달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APEC 2025 (10월 31~11월 1일)을 앞두고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 기간 향후 미일 관세 운명이 정해질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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