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아시아태평양 주요 정치인과 기업인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가운데 이들이 한국산 치킨과 화장품 등에 푹 빠져 눈길이 모아진다.
APEC 공식 일정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0월 29일부터 한미 정상회담과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APEC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물들이 한국산 치킨집을 찾거나 외국 정상이 한국산 화장품을 좋아해 사용하고 있다고 알리는 등 ‘K-컬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 ‘도원결의’ 아닌 ‘치맥결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GeForce Gamer Festival) - 서울’ 행사에 깜짝 등장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세 사람은 앞서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가진 뒤 행사장을 함께 찾았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AI(인공지능)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 젠슨 황과 이른바 '치맥(치킨+맥주) 회동'을 해 관심을 모은다.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30일 방한한 젠슨 황 CEO와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3자 회동해 화제가 됐다.
황 CEO는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한 뒤 저녁 7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삼성동에 있는 깐부치킨에서 이 회장, 정 회장과 만났다. ‘치맥 회동’으로 불리는 이 만남은 황 CEO가 15년만에 한국을 방문해 가진 첫 대외일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3명은 깐부치킨에서 맥주와 함께 크리스피 순살치킨, 마늘간장 순살치킨 등 2만원대 초반 메뉴를 주문했다”라며 “황 CEO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매료돼 이 회장과 정 회장에게 자사의 AI 초소형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를 선물했다”라고 설명햇다.
그는 “황 CEO는 치킨집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맥주잔을 부딪히는 사교력을 발휘했다”라며 “이번 회동은 글로벌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들 3명은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협력 강화에 나선 상징적인 자리를 마련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이날 회동 장소가 ‘깐부치킨’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깐부’는 ‘가까운 친구’를 뜻하는 표현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대사로 나와 유명해졌다.
이에 따라 이들 세 사람이 AI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이날 저녁 식사를 하며 AI 등 미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이에 따라 이들은 AI 반도체, 자율주행,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등 각 사 핵심 사업과 관련해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 K팝·K드라마 등 K콘텐츠 인기 힘입어 치킨, ‘K푸드’ 간판 메뉴 등극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홍보를 마치고 방한 마지막 날 서울 마포구 공덕동 ‘바른치킨 공덕파크자이점’을 방문해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바른치킨]
 
젠슨 황 CEO 예처럼 이른바 ‘K치킨’은 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 식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의 세계적인 영화배우 톰 크루즈 역시 지난 2023년 한국을 방문해 서울 마포의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두 차례나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크루즈는 2023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홍보를 위해 서울에 왔을 때 마포의 유명 불고기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인근 치킨집을 방문했다”라며 “그는 지난 5월에도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개봉을 앞두고 방한해 같은 치킨집을 찾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K팝·K드라마 등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한국식 치킨이 외국인 사이에서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지난 2023년 베이징, 호찌민, 뉴욕 등 해외 주요 18개 도시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한식은 한국식 치킨(16.5%)이 가장 많았고 라면(11.1%), 김치(9.8%), 비빔밥(8.8%) 순이었다.
이를 보여주듯 BC카드가 최근 3년치 소비 데이터를 분석한 후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결제 건수 1위는 치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치맥이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라며 "한국에 와서 치킨을 먹어보니 외국에서 먹는 치킨에 비해 맛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 식문화의 대명사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 미국 정치인·일본 총리, 한국산 화장품 애호가로 변신 
치킨에 이어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국빈 방문에 동행한 캐롤라인 레빗(28)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2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한국 화장품 구매 인증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캐롤라인 레빗(28)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한국 화장품을 인증하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마스크팩, 세럼, 립밤 등 국내 브랜드 제품 13종이 담겼다. [사진=karolineleavitt 인스타그램]
 
레빗 대변인은 이날 눈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자신이 산 한국 화장품의 인증사진과 함께 "한국 화장품 발견"(South Korea skincare finds)"이라는 글과 하트 이모티콘을 게시했다.
레빗 대변인이 올린 인증 사진에 있는 화장품은 국내 브랜드 제품으로 모두 13개다. 마스크팩과 클렌징 제품, 립밤, 세럼, 선크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업계 관계자는 ”레빗 대변인이 화장품을 어디서 샀는지는 나와 있지 않으나 제품 포장 중에 '올리브영 단독 기획'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1997년생인 레빗 대변인은 지난 1월 발탁 당시 27세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두 정상은 한일 협력 강화와 지역·관광 교류 확대 방안을 논의했으며, 다카이치 총리는 “예정된 20분을 넘겨 45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SNS에 전했다. [사진=다카이치 사나에 X(구 트위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예외는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기자 회견 때 한국의 김과 화장품을 좋아해 사용한다고 취임 기자회견에서 말해 눈길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APEC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화장품과 김을 일본 총리에게 선물했다“라며 ”이에 질세라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 고향인 안동시와 결연을 맺은 가마쿠라시에서 제작한 바둑알과 통을 바둑을 좋아하는 이 대통령에게 선물했다“라고 평가했다.
 
◇ ‘K-컬처’ 인기 끌어올리는 ‘소프트파워’ 적극 육성해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이번 APEC에서 목격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정치인과 기업인이 K컬처에 매료된 데에는 위상이 크게 개선된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파워 이론(Soft Power Theory)’은 미국의 유명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가 처음 소개했다.
소프트파워 이론에 따르면 한 국가의 영향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뿐만 아니라 ‘문화적 매력(cultural attractiveness)’에서도 비롯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경제가 세계 10대 강국으로 우뚝 선 가운데 한국의 경제적 위상 못지않게 한국 음식·화장품이 세계 정치·경제 엘리트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흔히 전통적인 국력 지표인 국방력이나 경제력은 하드파워로 분류하고 소프트파워는 음악, 영화, 음식 등 문화적 요소를 담고 있다“라며 ”한국 경제발전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이 BTS, 블랙핑크처럼 글로벌 가수들의 맹활약에도 큰 인상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른바 ‘문화 전이 효과(Cultural Spillover Effect)’를 거론한다.
문화 전이 효과는 한류 콘텐츠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와 관련이 없는 산업인 식품과 화장품으로 소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그는 ”특정 국가의 문화적 호감이 식품 등 산업의 구매 장벽을 낮추고 있다“라며 ”K푸드와 K뷰티는 이제 특정 지역 특산품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활용될 수 있는 핵심병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러한 폭넓은 인기는 K푸드와 K뷰티에도 글로벌 표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라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기술 강국을 넘어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문화 산업이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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