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ISDS 취소 결정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는 김민석 국무총리.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정부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S(투자자-국가 분쟁)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로써 13년간 이어진 국제 중재 분쟁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가 2022년 중재판정부가 인정한 약 4000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 책임을 전부 취소하면서, 한국 정부의 의무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은 것으로 확정됐다.

18일 오후 정부는 ICSID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annulment)’ 결정을 공식 통보받았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22분, 미국 워싱턴 D.C. 기준 새벽 1시22분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2022년 8월 30일자 중재판정부 판정에서 인정된 원금 2억1650만달러와 이자 지급 의무가 모두 취소됐다”며 “정부의 배상 책임이 소급해 전부 소멸했다”고 밝혔다.

이어 “취소 절차에서 정부가 지출한 소송비용 약 73억원을 론스타가 30일 내 지급하라는 환수 결정도 함께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역시 “기존 중재판정의 오류가 바로잡혔다”며 승소 소식을 환영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정부에 위법행위가 없었음에도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기존 판정이 취소됐다”며 “정부를 믿고 응원해 준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정부의 승소 소식을 신속히 전하며 관련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국제 분쟁 해결 체계에서 중재판정부의 판단을 취소위원회가 완전히 무효화하는 사례는 드문 만큼, 국제중재 업계에서도 이번 결정의 파급효과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ICSID 통계에 따르면 전체 판정(awards) 가운데 ‘전면 취소’는 약 2%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충돌은 무엇에서 비롯됐나

‘스타타워’로 불리던 시절의 강남파이낸스센터 전경. 당시 소유주였던 론스타가 미국 텍사스 출신 펀드임을 상징하는 별 모양 장식이 상층부에 설치돼 있다. [사진 =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


이번 분쟁의 출발점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던 외환은행을 약 1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국내 금융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이후 은행 정상화와 가치 회복이 이뤄지자 2007년 HSBC 등 복수의 인수 후보와 매각 협상을 진행하며 엑시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매각은 계획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지속하며 승인 결정을 보류했고,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시장 변동성 확대 등 외부 변수로 외환은행의 가치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HSBC(홍콩상하이은행)와의 매각은 무산됐고, 이후 하나금융지주와의 거래 역시 승인 절차가 길어지며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매각 지연의 책임을 정부에 돌렸다.

론스타는 국제 중재에서 “정부의 고의적 지연과 과도한 개입으로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기회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 대주주 적격성 심사 장기화 △ 가격 조정 과정에서의 감독당국 개입 △ 정치·사회적 환경 고려 등이 손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들인 뒤 고가 매각 기회를 놓쳤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매각 종료 직후 론스타는 ICSID에 약 46억달러(약 6조9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분쟁은 본격화됐다.

총 10년에 걸친 문서 심리와 증인신문 끝에 2022년 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주장 일부만을 인정해 한국 정부에 약 2억1650만달러(한화 약 3000억~4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판정 직후 한국 정부는 즉시 정면 대응에 나섰다.

김민석 총리는 “중재판정부 판정에는 중대한 절차적·법리적 오류가 있었다”며 “정부는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즉시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론스타 역시 판정 일부가 부당하다며 별도의 취소 신청을 내면서 양측의 분쟁은 2라운드에 돌입했다.

취소 절차는 2023년 본격화됐고, 2025년 1월 영국 런던에서 3일간 구술심리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 적법절차 준수 여부 △ 증거 평가의 공정성 △ 중재판정부의 권한 범위 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심리 과정에서 취소위원들이 절차 위반에 관해 상당히 많은 질문을 던졌고 긍정적인 흐름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결국 ICSID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취소 사유를 전면 수용하며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13년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 이례적인 ‘전부 취소’…무엇이 승부 갈랐나


법무부에 따르면 취소위원회가 인정한 핵심 취소 사유는 △ 중재판정부의 권한 초과(excess of powers) △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serious departure from a fundamental rule of procedure) △ 핵심 판단 이유 불설시(failure to state reasons) 등 ICSID 협약 제52조가 규정한 대표적 취소 요건들이다.

구술심리에서는 절차적 공정성과 방어권 보장 여부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 결정문 전문(120페이지)에 대한 분석을 진행 중이지만, ICSID의 과거 취소 판례 흐름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에서도 유사한 절차적 문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Wena Hotels v. Egypt(2002) 사건에서는 중재판정부의 증거 처리 방식이 문제 됐고, MINE v. Guinea(1989) 사건에서는 핵심 쟁점에 대한 판단 이유가 불충분해 취소가 결정됐다. Vivendi v. Argentina(2002) 사건에서도 판정 이유 제시가 취소 요건으로 논의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에서도 중재판정부가 정부 측이 제출한 증거와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했는지, 승인 지연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설시했는지, 그리고 금융감독 당국의 고유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했는지 등이 취소위원회 판단에 중요한 쟁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취소 결정이 국제투자분쟁(ISDS) 제도에 제기돼 온 절차적 투명성 논란을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가의 금융감독권과 공적 정책 결정 범위를 국제분쟁 해결 절차가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일부 국제중재 전문가는 “근거와 이유 제시가 불충분한 판정은 취소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해졌다”며 “이번 결정은 한국 정부의 향후 국제분쟁 대응 전략에도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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