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원청 교섭권 확대와 쟁의 범위 확장을 담으며 산업계에 법적·경영 혼란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왼쪽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오른쪽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 =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권 보장과 쟁의행위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다.
그러나 재계는 이 법안으로 기업 경영과 생산 현장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권 보장…법안 주요 내용과 제정 배경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단체교섭 당사자에 포함한다.
이에 따라 하청노조가 원청 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또한 쟁의행위 정의에서 ‘근로조건의 결정’이라는 제한 범위는 유지하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과 단체협약 위반도 쟁의 사유에 추가돼 권리분쟁을 포함한 폭넓은 쟁의가 가능해진다.
합법적인 파업 등에 대해서는 원청과 하청의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법안 명칭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법원이 노조에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하자 한 시민이 ‘노란 봉투’에 성금 4만7000원을 담아 언론사에 전달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노동계는 이를 “살인적인 손배 청구로 위축된 노조 활동을 지키기 위한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 원청·하청 협력망 붕괴 가능성에 산업계 초긴장
경영계는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원청-하청 협상 구조가 뒤엉키고 생산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산업 현장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들 수 있어 우려된다”라며 “원청기업이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대·기아차처럼 하청 구조가 다층적인 업종은 교섭 창구 단일화 기준이 없어 협상 절차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은 춘투(봄철 임금 협상)를 3월까지 끝내 회계연도 시작 전에 불확실성을 없앤다”라며 “이는 내부 불확실성을 정리하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경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쟁의 범위 커져
현행법상 파업 등 쟁의행위는 임금·근로 시간 등 직접적인 근로조건 변경과 관련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조건의 결정’이라는 제한 문구가 사라져 경영 전반에 관련된 다양한 사안도 파업 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해외 공장 설립, 국내 생산 라인 감축,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자동화 등 기업의 중·장기 전략까지 노조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산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본사가 파업에 휘말리면 전체 경영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이번 법안은 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률과의 충돌 가능성 제기
또 다른 쟁점은 기존 법률과의 충돌 문제다.
공정거래법은 원청기업이 하청업체 인사·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복지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면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원청이 교섭에 응하려면 하청의 인사나 조직 운영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하는데 이는 공정거래법상 ‘경영 간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소속 한 연구위원은 “두 법률이 상반된 방향을 요구할 수 있어 현장에서 법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 시행 전 준비 기간에도 혼란 불가피 전망
정부는 법안 시행 전 6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세부 지침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추상적 법문을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핵심”이라며 “20년 동안 기다려온 요구인 만큼 안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준비 기간이 짧아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전문가는 “법과 제도는 시장과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 충분한 검토 없이 시행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