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미국 특허라도 국내에서 활용됐다면 사용료를 국내원천소득으로 보아 과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받은 특허 사용료도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해 과세당국이 세금을 매길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를 뒤집은 이번 결정은 반도체 등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 기존 판례 뒤집은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낸 법인세 환급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은 SK하이닉스가 2013년 미국 법인과 반도체 특허 사용 계약을 체결하고 매년 160만 달러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SK하이닉스는 2014년 사용료 지급 시 약 3억1000만 원의 원천징수세액을 납부했으나, “해당 특허가 한국에 등록되지 않았으므로 국내원천소득으로 볼 수 없다”며 환급을 청구했다.

◇ 쟁점은 ‘특허 사용’의 의미

핵심 쟁점은 한미 조세협약에서 규정한 ‘특허의 사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부였다.

SK하이닉스는 특허권 속지주의(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효력이 있다는 원칙)를 근거로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는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사용료도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조세협약이 규정하는 사용료에는 특허권뿐 아니라 저작권, 노하우, 기술 등 등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형자산이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은 권리증서 자체가 아니라 기술·정보라는 실질적 내용의 활용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 “속지주의는 침해 문제일 뿐”

대법원은 “특허권 속지주의는 침해 성립 여부를 가르는 원칙일 뿐, 과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한국에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해당 기술을 국내 제조·판매 과정에서 실제 활용했다면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으로 본다는 논리다.

이는 종전 판례가 속지주의를 근거로 “국내 등록이 없는 특허는 사용을 상정할 수 없다”고 해석했던 부분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국내원천소득은 한국에서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 소득을 의미한다.

이번 판결에 따라 해외 특허기술 사용료 역시 국내원천소득으로 인정돼 과세당국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고, SK하이닉스의 원천징수 법인세 환급청구를 거부한 국세청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어 사건은 수원고법으로 환송돼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법리에 따라 사실관계가 다시 심리될 예정이다.

◇ 특허 사용료 과세, 국내 기업 협상력 약화 우려

이 같은 판결로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해외 기업에 지급하는 특허 사용료에 대해 원천징수를 사실상 피할 수 없게 됐다.

원천징수는 외국 기업의 소득에서 세금을 먼저 공제해 국세청에 납부하는 제도로, 세부담은 원칙적으로 외국 기업이 지지만 계약 조건에 따라 국내 기업이 이를 떠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해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원천징수 부담이 특허 사용료 협상 과정에서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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