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10월부터 미국 내 생산공장이 없는 국가의 브랜드·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예고했다. [사진 = The White House]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자동차에 이어 이번에는 제약업계에 관세 폭탄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월부터 미국 내 의약품 제조공장이 없는 국가에서 수입하는 모든 브랜드·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해 최대 15% 관세 상한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미국과 협상단계여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 트럼프, SNS 통해 10월 1일부터 100% 관세 으름장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에 “미국에 의약품 공장을 짓지 않으면 10월 1일부터 모든 브랜드 의약품과 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미국 경제방송 CNBC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 정면 배치된다. 당시 그는 미국이 초기에 관세를 소폭 부과한 후 향후 점진적으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관세협상 타결국에는 예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의약품 관세 대상은 일본과 EU 등 협정을 체결한 국가에도 적용되지만 협정에 따라 15%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이 지난 7월 무역협정을 협의하며 미국측으로부터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약속을 받았지만 이를 최종 서명하거나 문서화하지 않은 상태”라며 “이처럼 한국이 관세 상한을 보장받지 못해 한국산 의약품도 미국 시장에서 관세 100%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 한국 제약업체, 미국 수출액 미미하지만 수출 의존도 절반 차지
한국산 의약품은 반도체나 자동차 등 국내 주요 수출 품목에 비해 수출액이 큰 편은 아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유엔 무역통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미국의 의약품 수입액은 2126억달러(약 299조원)다.
이 가운데 한국산 의약품은 40억달러(약 5조6400억원)로 약 1.82%에 그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총 금액(1316억달러)과 비교하면 의약품 수출은 3% 정도”라며 “그러나 국내 의약품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출액이 5조원이 넘지만 여기에 관세가 100% 부과되면 가격경쟁력이 없어진다”라며 “특히 한국은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베터 의존도가 높아 국내 제약업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바이오시밀러는 ‘생체의약품 복제약’이고 바이오베터는 바이오시밀러에 신규 기술을 적용해 성능을 개량한 의약품을 뜻한다.
◇ 한국 제약 수출 핵심축 ‘바이오시밀러’-‘바이오베터’ 타격 큰 이유는
미국 관세로 한국산 의약품이 타격을 받게 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베터가 안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산업은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라며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은 특허가 끝난 후에도 가격이 비싸지만 바이오시밀러는 가격 인하(약 30~50%)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한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관세를 10~25% 이상을 부과하도 한국업체의 가격경쟁력이 대부분 없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제약업체가 약값을 미국에 30% 싸게 공급해도 25% 관세가 붙으면 남는 차액은 5% 정도”이라며 “이런 가운데 관세 100%는 사실상 미국내 수출길이 막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제약업계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바이오베터도 마찬가지”라며 “한국 업체 입장에서 바이오베터는 아직 시장 진입 초기단계로 임상·승인·유통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고율의 관세가 붙으면 바이오베터의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워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좌절되는 낭패를 맞을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 셀트리온-SK바이오팜-롯데바이오, 미국내 거점 마련해 대응책
미국 정부가 이처럼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업체도 미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제약업체 셀트리온이 대표적인 예다.
셀트리온은 지난 20일 미국 일라이릴리 공장 인수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번 인수에 따른 비용은 1조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이 인수금 등 초기 운영비를 포함해 약 7000억원을 투입하고 유휴 부지에 7000억원 이상을 들여 추가 생산시설을 짓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미국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램시마SC)와 여러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해온 셀트리온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게 EHOTEK.
SK바이오팜도 예외는 아니다.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로 미국에서 연간 수 천억원 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SK바이오팜은 이미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현지 생산 파트너를 확보해 미국 현지 생산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에 출시한 GC녹십자그룹은 미국 자회사 메이드사이언티픽을 통해 뉴저지에 의약품 제조시설을 확보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충분한 대형 제약업체는 미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관세 역풍을 피할 수 있지만 나머지 중소 제약업체는 향후 대응책에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한국을 첨단 바이오의약품 제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인 관세정책으로 향후 과정에 암초가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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