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삼성전자]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이른바 ‘삼성전자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정현호(65)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현호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그동안 사업지원TF장을 맡아왔다.

정 부회장 퇴진으로 사업지원TF도 구조가 바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후 신설한 조직이 사업지원TF다.

이에 따라 2017년 이후 그동안 비상 조직으로 운영되어온 사업지원TF가 ‘TF’를 때고 정식 사업지원실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 등 7개 팀 편제로 이뤄졌던 미래전략실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부당 지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공중 분해됐다.

이재용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 부회장의 예상치 못한 퇴진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하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작된 사법리스크가 지난 7월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모두 사라져 이 회장이 삼성전자를 다시 글로벌 초우량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라고 풀이했다.

◇ 정현호 부회장은 누구

정현호 삼성전자 전 사업지원 TF장 부회장.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임원으로 알려졌다.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3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과에 입사한 후 미국 하버드 대학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학업을 마친 그는 2002년 삼성전자 비서실 재무팀과 경영관리그룹장, 2006년 전략기획실 상무, 2008년 무선사업부지원팀장을 역임하는 등 회사내 핵심 부서를 맡았다.

그는 또 2011년 카메라와 캠코더 사업을 이끄는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을 맡은 후 2014년 4월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미래전략실이 해체돼 사표를 내고 삼성을 떠났지만 2018년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사업지원TF장 사장으로 복귀했다.

재계 관계자는 “해체된 미전실 팀장 가운데 정 부회장만이 유일하게 복귀해 당시 이 부회장이 그에 대한 신임이 어느 정도였는 지를 보여줬다”라고 설명했다.

◇ 정 부회장, 이 시점에서 물러나는 이유는

정 부회장은 사업지원TF장으로 취임하면서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도전정신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재무통인 정 부회장이 기술혁신 등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부분에 머뭇거렸다는 얘기가 있다”라며 “예를 들어 그는 갤럭시 CPU 코어 개발팀 해제를 비롯해 최근 AI(인공지능) 반도체 필수 부품인 HBM(고(高)대역폭메모리 연구 중단 조치, 레거시(범용) D램 공정 전환 지연 등 회사 혁신을 이끌 사업 부문에서 삼성전자 특유의 도전정신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 부회장은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은 비용 등을 이유로 사업을 접어 글로벌 기술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 전쟁에서 삼성전자가 밀리는 결과를 빚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대표적인 예가 HBM”이라며 “AI 열풍으로 HBM이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이 사업영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경쟁업체 SK하이닉스가 전세계 HBM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삼성전자가 그동안 거머쥔 반도체 패권을 SK에 넘기게 됐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게 된 데에는 정 부회장 등 재무통(通) 입김이 커 엔지니어 인맥이 뒷전으로 밀린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박학규 삼성전자 신임 사업지원실장(사장). [사진=삼성전자]

한편 삼성전자는 정 부회장 후임으로 박학규 사장을 새 사업지원실장에 선임했다.

박 사장은 1964년생으로 청주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학과 석사 학위를 받아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과 DS부문 경영지원실장 등을 두루 거친 재무통이다.

◇ 이 회장, 그룹 신(新)성장 동력 마련 등 그룹 경쟁력 강화 ‘숙제’

[사진 = 대통령실]

재계는 정 부회장의 2선 후퇴로 이 회장이 삼성전자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숙제를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지원TF가 지난 8년간 ‘임시 조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것은 이 회장 사법리스크 등을 비롯해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해법“이었다며 ”그러나 이 회장이 최근 사법 리스크에서 모두 벗어나면서 회사 조직을 다시 정상화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가 지난 2023년 연간 영업이익이 7조원에도 못 미치는 등 부진의 늪에서 허덕였지만 올해 3분기 86조원 매출을 거둬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다시 도약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퇴진으로 이 회장이 AI와 로봇 등 미래 먹거리 사업을 집중 육성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 회복과 기술 초격차에 매진하는 ‘뉴 삼성’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삼성전자는 지금 중대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라며 “그룹 최고 사령탑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났고 전세계 AI 열풍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데다 로봇 등 미래 먹거리 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 삼성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 그룹의 위용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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