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사진 = 한국경제인협회]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기업 활동과 관련된 법률 위반 가운데 상당수가 징역형까지 이어질 수 있는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행정 의무 누락이나 경미한 영업 편의 조치까지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기업 현장의 경영 리스크가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21개 부처가 소관하는 경제 관련 법률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 활동과 연관된 법 위반행위 8,403개가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한다고 10일 밝혔다.
한경협은 이 가운데 법인까지 함께 처벌되는 양벌규정 적용 비중이 91.6%에 달하며, 약 34%는 징역·벌금·과징금·몰수·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중복 부과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공정거래법에서는 가격·원가·재고 등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도 담합으로 ‘추정’될 수 있다. 명시적인 합의가 없더라도 최대 징역 3년과 벌금, 과징금,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4중 제재가 부과될 수 있는 구조라고 한경협은 설명했다.
또 점포 앞 테라스 설치나 천막 지붕 보완과 같은 경미한 시설 변경이 ‘무허가 증축’으로 간주될 경우에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화장품 라벨이 일부 훼손된 제품을 판매하거나 진열만 해도 최대 징역 3년형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 과정에서 친족 지분 확인 누락처럼 실무상 발생할 수 있는 착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지적됐다. 이 경우 최대 징역 2년 또는 벌금 1억5천만 원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이처럼 고의적인 담합이나 사기적 행위가 아니라도, 자료 확인 과정의 한계나 절차적 실수가 곧바로 형사 리스크로 이어지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러한 중복 제재 구조가 하나의 행위에 대해 통일된 제재 체계 없이 형사처벌·과징금·행정처분·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서로 다른 법률 목적에 따라 각각 적용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형사처벌은 위법 억제, 과징금은 부당이득 환수, 행정처분은 질서 유지,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 구제를 목표로 운용되지만, 제재 간 관계와 적용 원칙이 체계적으로 정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각의 적용 범위가 확장되다 보니, 하나의 행위에도 복수의 제재가 동시에 작동하는 사례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반면 미국·EU·일본 등은 경쟁법과 행정법 체계를 분야별로 정리해 형사·민사·행정 제재의 역할과 적용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을 운용한다. 시장 질서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담합·카르텔 등의 중대한 사안은 형사처벌로 대응하되, 자료 제출 누락이나 절차상 실수처럼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은 민사 또는 행정제재 중심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경제형벌 체계는 형사처벌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고 제재 강도가 중첩되는 특성이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단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 체계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경영 리스크를 높이는 주요 요인”이라며 “경제형벌 합리화 논의가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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