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매밀런 전 월마트 CEO(오른쪽)와 차기 CEO 존 퍼너. [사진 = 월마트]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16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유통기업 월마트가 내년 초 더그 매밀런(Doug McMillon) 최고경영자(CEO)의 퇴임을 공식화했다.

새 CEO는 월마트 미국 사업부를 총괄해온 존 퍼너(John Furner)로, 2026년 2월 1일자로 글로벌 CEO에 취임한다.

매밀런은 다음 주주총회까지 이사회에 남아 경영 인수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월가와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단순한 리더십 교체를 넘어선다고 평가했다. 지난 11년간 월마트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오프라인 유통 공룡’을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시킨 매밀런의 시대가 이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가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월마트가 본격적인 확장 국면으로 진입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 아마존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은 미국 최대 소비 인프라

[사진 = 월마트]


국내에서는 월마트를 ‘미국판 대형마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미국 내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미국 전체 소매시장 점유율은 10%를 넘고, 식료품만 놓고 보면 미국 소비자 4명 중 1명이 월마트를 이용한다. 전국에 4700여 개 매장이 있어 대다수 미국인은 집에서 10마일 이내에 월마트가 있다. 월마트가 미국 생활 인프라로 불리는 이유다.

물론 전자상거래 부문에서는 아마존이 압도적이다. 미국 e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아마존이 약 40%로 월마트(7~8%)를 크게 앞선다.

그러나 온·오프라인을 합친 전체 유통 시장에서는 월마트가 여전히 아마존보다 규모가 크다. 아마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 전국 단위의 촘촘한 매장망을 기반으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해온 결과다.

월마트는 지난 10여 년 사이 매장을 단순 판매공간이 아닌 △라스트마일 배송 거점 △온·오프라인 통합 픽업센터 △데이터 기반 운영 허브로 개편했다. 자체 광고 플랫폼과 마켓플레이스를 육성하며 수익 구조도 다변화했다.

업계에서는 월마트를 “소매·물류·기술·광고가 결합된 복합 플랫폼”으로 규정한다.

◇ 매밀런의 11년, 위기를 전환점으로 바꾼 ‘재창조의 시대’

더그 매밀런 전 월마트 CEO. [사진 = 더그 매밀런 인스타그램]


2014년 매밀런이 CEO에 올랐을 때 월마트는 방향성을 잃은 상태였다.

아마존 프라임이 급성장하고 모바일 쇼핑이 본격 확대되던 시기였지만, 월마트는 느린 의사결정과 보수적 조직문화로 변화에 뒤처져 있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연달아 구조조정에 들어가던 시점이었다.

매밀런은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부터 다시 정의했다.

매장을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전국 단위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으로 삼았다. 매장 재고를 활용한 당일·익일 배송, 매장 픽업 서비스는 아마존 중심의 경쟁 구도를 실질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자동화 설비와 로봇 기반 재고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공급망 효율도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조직 혁신도 뒤따랐다.

그는 “빠르게 시도하고, 과감히 실패하고, 즉시 개선하는 구조”를 강조하며 월마트 특유의 리스크 회피 문화를 완화했다. 기술 인재 영입을 확대해 디지털 전환 속도를 끌어올리고, 임금·교육·보상 체계도 손질하며 ‘저임금 기업’ 이미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매밀런 재임 기간 성과는 명확했다. 브랜드 가치는 2014년 448억달러에서 올해 1372억달러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이는 환율 1400원을 기준으로 약 62조원에서 192조원으로 확대된 수준이다.

글로벌 브랜드 평가기관 브랜드파이낸스(Brand Finance)의 ‘글로벌 500대 브랜드’에서도 브랜드 강도 지표에서 AAA 등급을 받으며 안정성과 신뢰도까지 인정받았다.

주가 역시 같은 기간 310% 상승하며 S&P500을 크게 앞질렀고, 월마트는 미국 e커머스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서는 성과를 냈다.

여기에 광고 플랫폼(‘Walmart Connect’), 핀테크, 헬스케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 등 신사업도 본격 궤도에 오르며 수익 구조가 다변화됐다.

외신들은 그를 두고 “월마트를 20세기형 오프라인 기업에서 21세기형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시킨 CEO”라고 평가했다.

◇ 변혁은 끝났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월마트 데이터벤처스가 지난 10월 개최한 연례 컨퍼런스 ‘Inspire 2025’의 패널 토론 장면. AI·데이터 기반 유통 혁신 전략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사진 = 월마트]


외신들은 이번 CEO 교체를 월마트가 ‘전환기에서 확장기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 외신들은 이번 퇴임 시점이 “예상보다 이른 결정”이라고 전하면서도, 내부 승계를 택한 것을 두고 “매밀런의 전략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는 선택”이라고 봤다.

시장에서는 월마트가 새로운 장기 성장 전략을 펼칠 준비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월마트 이사회 의장 그렉 페너는 차기 CEO 존 퍼너에 대해 “매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30년 넘게 주요 운영 부문을 모두 경험한 리더”라며 “디지털 전환과 직원 참여 강화 속에서도 미국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퍼너가 매밀런 체제의 핵심 전략인 △오프라인 기반 물류 고도화 △광고·데이터 사업 확장 △옴니채널 시너지 강화 등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월마트 주가는 퇴임 소식 직후 프리마켓에서 약 3% 하락했지만, 연초 대비로는 여전히 14%가량 상승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퍼너 체제에서 성장 전략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혁기를 이끈 매밀런의 뒤를 잇는 퍼너는 이제 월마트의 ‘확장기’를 본격적으로 열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 기업 환경이 AI와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되는 만큼, 월마트 역시 물류 자동화·데이터 사업·광고 플랫폼 등에서 한층 더 민첩한 대응이 요구된다. 퍼너가 이 기술 경쟁 구도 속에서 월마트의 다음 성장 로드맵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향후 10년을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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