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에서 40여 일 만에 초장기 셧다운이 종료됐지만, 시장은 반등보다 ‘추가 하락’으로 응답했다.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장 초반 각각 3%와 4% 넘게 밀렸고, AMD·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주도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나스닥은 1.2%, S&P500은 1% 떨어지며 기술주 중심의 매도세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다. 일부 거래일에서는 전날 대비 낙폭이 더 깊어진 종목도 적지 않았다.
시장은 셧다운 종료를 반길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셧다운은 결국 해결될 것”이라는 가정이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관계자들은 “셧다운 종료는 예상된 결과였고, 이벤트가 사라지자 시장의 관심이 다시 본질적 리스크로 빠르게 이동했다”고 전했다.
연준이 12월 금리 인하를 단행할지 여부가 불투명해진 데다, AI 대표기업들의 밸류에이션 부담과 장기간 지표 공백에서 비롯된 정책 불확실성이 동시에 겹치면서 투자심리는 더 민감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기술주 약세가 두드러지자 시장에서는 “셧다운 해소가 오히려 연준의 정책 불확실성을 자극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신은 “셧다운 종료는 끝이 아니라, 시장이 다시 금리·물가·AI 버블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출발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연준이 40일 넘게 멈춰 있던 경제지표 없이 정책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시장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결국 셧다운 종료 효과보다 향후 경제 지표와 연준의 정책 방향성이 기술주 중심 조정 흐름을 좌우하는 더 큰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셧다운이 뭐길래…역대 최장 기록 깬 이번 셧다운의 정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연방정부 재개를 위한 자금 법안에 서명한 뒤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주변에는 법안 처리에 관여한 의회 관계자들이 배석해 서명을 축하하고 있다. 셧다운 종료를 공식화하는 절차로, 이날 서명을 통해 40여 일간 중단됐던 정부 운영이 재개됐다. [사진 = 백악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의회의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제도적 현상이다.
예산 승인에 실패하면 정부 기관은 법적으로 자금을 집행할 수 없게 되고, ‘필수 인력’을 제외한 상당수 공무원들이 무급휴가 또는 무급 근무에 들어간다.
통계기관들도 운영을 중단해 경제·고용·물가 등 주요 지표가 생산되지 않으면서, 정책당국과 시장이 참고하는 국가 통계가 사실상 ‘정지’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한 경제분석가는 이번 사태를 두고 “셧다운은 단순한 행정 중단이 아니라 국가 데이터 인프라의 일시 붕괴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번 셧다운은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35일이었던 역대 최장 기록을 넘어, 10월1일부터 11월12일까지 총 43일 동안 이어졌다.
외신은 “미국 경제의 시계가 40일 넘게 멈춰 섰다”고 평가했다.
특히 물가 재가속과 고용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민감한 국면에서 국가 통계가 장기간 공백 상태에 놓인 탓에 경제 전반의 ‘블라인드 구간’이 확대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셧다운 장기화의 배경에는 예산안(Appropriations Bill) 처리 실패와 양당 간 정치적 대립이 자리한다.
백악관·하원·상원이 서로 다른 지출 우선순위와 정책 의제를 내세우며 충돌한 가운데, 셧다운을 막기 위한 임시예산(CR)조차 통과되지 못해 교착상태가 지속됐다.
정치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외신은 “정책적 이견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서면서 타협 구조 자체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은 핵심 통계기관의 문이 닫힌 채 가장 중요한 판단의 순간을 지나게 됐고, 이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 셧다운 종료가 오히려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든 이유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25년 10월 29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과 경제전망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셧다운으로 핵심 경제지표가 공백 상태인 가운데 연준의 판단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진 = 미 연방준비은행]
셧다운 종료 소식에도 시장은 강한 반등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엔비디아·테슬라·AMD 등 주요 기술주가 일제히 하락하며 ‘안도 랠리’가 실종된 모습이었다.
외신은 “투자자들은 셧다운이 곧 해결될 것이라는 전제를 이미 가격에 반영해 왔다”며 종료 자체를 ‘재료 소멸’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즉시 연준의 12월 금리 인하 여부, AI 대표기업들의 고평가 논란, 그리고 셧다운이 남긴 통계 공백이라는 더 구조적인 문제로 시선을 옮겼다.
특히 이번 셧다운으로 미국 통계기관의 데이터 공장은 40일 넘게 멈춰 있었다.
백악관은 이번 여파로 10월 고용·물가 보고서가 “영원히 발행되지 않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연준은 사라진 지표를 감안해야 하는 이례적 환경에서 12월 FOMC를 준비하고 있으며, 외신은 이를 “연준이 데이터 없는 경제를 해석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셧다운 기간 동안 시장이 의존한 민간 데이터는 일관되게 부정적이었다.
ADP·Revelio Labs 등 민간 고용데이터는 정부·유통 부문의 일자리 감소, 비용 절감에 따른 구조조정 확대 등을 보여주며 노동시장 둔화를 시사했다.
예일 예산연구소(Yale Budget Lab)의 마사 김벨(Martha Gimbel)은 “우리는 지금 미국 경제의 절반만 보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공백 속에서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표 공백과 연준의 불확실성이 강화되면서 기술주 중심의 매도세는 더욱 가속화됐다.
한 글로벌 운용사 관계자는 “셧다운이 끝났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장의 진짜 시험대”라고 진단했다.
◇ AI 옹호론자 vs 회의론자…셧다운이 던진 ‘불확실성의 장작’
미국 시장은 AI 옹호론자와 회의론자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AI가 기업가치를 재정의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실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열된 밸류에이션을 경계하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선다.
이번 초장기 셧다운이 남긴 통계 공백과 정책 불확실성은 이 논쟁의 온도를 한층 더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 고문은 “데이터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회의론자가 주도권을 쥔다”며 “셧다운 종료는 논쟁을 잠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작을 던진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는 최근 자신의 운용사 스카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를 공식 등록 목록에서 제외해 포지션 공개 의무에서 벗어났다.
외신들은 “버리가 대형 기술주—특히 AI 관련 종목에 대규모 숏 포지션을 쌓고 있다는 소문이 월가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AI 기대와 셧다운 후폭풍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변동성이 커지는 구간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AI 버블 논란, 연준의 금리 경로, 미국 통계 공백이라는 삼중의 불확실성을 떠안은 채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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