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는 지난 19일 마이크로소프트·앤트로픽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사진 = NVIDIA]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빅쇼트(Big Short)’의 실제 인물인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NVIDIA)의 사상 최대 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으로 회사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버리는 X(구 트위터)에 일련의 게시글을 올리며 엔비디아 칩의 수명, 주식 희석, AI 생태계의 순환 구조(give-and-take) 등을 조목조목 문제 삼았다.
반면 엔비디아 경영진은 AI 버블 우려를 강하게 일축하며 GPU 수요의 견조함과 칩의 경제적 수명 확장에 대한 강조로 맞섰다.
엔비디아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콜레트 크레스 CFO는 “2025~2026년 블랙웰·루빈 아키텍처에서만 0.5조달러 규모의 매출 가시성이 있다”고 언급했고, “2030년까지 연간 3조~4조달러의 AI 인프라 구축 수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젠슨 황 CEO 역시 “AI 버블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시장 과열 우려를 일축했다.
특히 크레스는 “CUDA(엔비디아가 개발한 GPU 병렬 연산 플랫폼) 덕분에 6년 전에 출하된 A100 GPU도 오늘날 여전히 100% 가동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블랙웰·호퍼·암페어 등 모든 세대의 GPU 설치 기반이 완전히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이를 근거로 칩의 ‘경제적 유효수명’이 기존 예상보다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 마이클 버리, 일련의 게시글로 엔비디아 정조준
그러나 버리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그는 첫 번째 게시글에서 “구형 칩이 계속 사용된다고 해서 회계상 유효수명이 길어진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물리적 사용과 가치 창출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무언가가 계속 사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이익을 낸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항공사 사례를 언급하며 “연말 성수기 좌석 수를 늘리기 위해 낡은 비행기를 계속 운용하지만, 이런 비행기는 대부분 간신히 수익만 낼 뿐이며 가치도 거의 없다”고 비유했다.
버리는 이어 구형 GPU의 에너지 효율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신형 칩보다 훨씬 많은 전기비용을 유발하는 구형 GPU를 계속 돌리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며 절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게시글에서 버리는 비판의 초점을 개별 기업에서 벗어나 AI 생태계 전체로 확장했다.
그는 “거대 AI 기업과 칩 공급자 사이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give-and-take(맞교환) 거래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구조가 겉으로 보이는 수요를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버리는 “실제 최종 수요는 터무니없이 작다. 거의 모든 고객이 사실상 공급자(dealers)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AI 생태계 내 순환 구조는 OpenAI·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대형 AI 플랫폼 기업들과 엔비디아 같은 칩 공급자들이 상호 투자·전략적 지분 확보·대규모 구매 약정을 통해 서로의 사업을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가 AI 스타트업이나 클라우드 기업에 투자하면, 해당 기업은 엔비디아 GPU 구매 여력을 확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엔비디아의 매출이 확대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버리는 이 같은 형태의 자금 흐름이 “자연발생적 수요라기보다는 공급자와 고객 간의 재무적 맞물림이 만든 인위적 수요”라고 비판한 셈이다.
현재의 AI 투자 붐이 실제 시장 수요가 아닌 “거대 기업 간의 순환적 투자 구조”에 기반해 과대 포장돼 있을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세 번째 게시글에서 버리는 엔비디아의 주식 구조와 자사주 매입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엔비디아는 2018년 이후 무려 1125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지만, 정작 발행주식 수는 4700만 주나 증가했다”고 지적하며 이는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반적인 자사주 매입 취지와 정반대 결과라고 비판했다.
버리 주장의 핵심은 엔비디아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본래 목적—주식 수 감소를 통한 주당가치 제고—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엔비디아가 인재 확보를 위해 지급한 RSU·스톡옵션 등 주식 기반 보상(SBC) 규모는 205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희석을 상쇄하기 위해 회사가 실제로 투입한 비용은 1125억달러 전체였다고 강조했다.
버리는 이를 두고 “희석의 ‘진짜 비용’은 205억달러가 아니라 1125억달러 전체”라며, 이는 결국 소유주 이익(owner’s earnings)—기업이 주주에게 실질적으로 귀속시키는 잉여현금흐름—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즉, 표면적으로는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 환원을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BC로 인한 희석을 막기 위해 회사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야 했으며, 그 결과 엔비디아의 현금흐름 구조가 왜곡됐다는 해석이다.
버리는 이 부분을 ‘AI 생태계의 순환 구조’ 비판과 연결하며, 엔비디아의 성장 스토리 일부가 과도한 주식 발행과 이를 상쇄하기 위한 막대한 현금 지출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버리는 마지막 게시글에서 “OpenAI는 모든 것의 중심인데, 그들의 (외부) 감사인은 누구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남겼다.
OpenAI는 비상장 구조에다, ‘비영리 재단 → 영리 자회사(OpenAI LP)’로 이어지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외부감사 체계가 상장사처럼 명확히 공개되지 않는다.
버리는 이 점을 겨냥해 “AI 생태계의 중심축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오가고 있음에도, 그 기초가 되는 재무제표와 감사 체계가 투명하게 검증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셈이다.
◇ 버리 지적, 실제 재무데이터와 맞물리는 지점도
버리의 지적은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실제 엔비디아의 재무 흐름과 일부 맞물리는 지점도 있다.
[사진 = NVIDIA CFO Commentary]
우선 3분기 엔비디아의 매출채권은 333억9100만달러로, 전년 동기의 177억달러에서 88%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2억8000만달러에서 91억0700만달러로 약 18억달러 증가하는 데 그쳐, 매출채권 증가폭에 비해 현금 유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GPU 수요의 상당 부분이 외상 기반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 NVIDIA Form 10-Q/Form 10-K]
또한 엔비디아의 비시장성 지분투자(Non-marketable equity securities)는 22억3700만달러로 전년 동기의 10억1900만달러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
잔액 증가보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신규 투자 규모다.
회사는 최근 3개월 동안에만 37억달러의 신규 투자를 집행했으며,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누적된 신규 투자액도 46억5200만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엔비디아는 Anthropic에 최대 100억달러를 투자하는 약정을 체결했고, OpenAI와의 협력 및 투자 LOI(Letter of Intent, 투자·협력 의향서)도 공식적으로 공개한 바 있어, 버리가 지적한 ‘AI 생태계 내 맞교환(give-and-take) 구조’와 맞닿는 흐름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 버리 비판 이어졌지만 ‘위험 신호 단정은 이르다’는 반론도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오른쪽)와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CEO가 독일 산업 전환을 위한 ‘인더스트리얼 AI 클라우드(Industrial AI Cloud)’를 공개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NVIDIA]
다만 버리의 주장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는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엔비디아의 매출채권 회수기간(DSO)은 50~53일 수준으로 업계 평균 범위에 속하며, 고성장 기술기업에서 매출채권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일각에서 제기되는 “현금 유입이 매출채권 증가만큼 따라붙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위험 신호로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엔비디아가 공급망 확보·AI 인프라 투자에 현금을 지속적으로 재배분하고 있어, 단기 현금잔고가 그대로 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시장성 지분투자를 통한 투자 확대 역시 AI 생태계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엔비디아가 스타트업·모델 개발사·클라우드 사업자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GPU 중심의 생태계를 넓히려는 장기적 전략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또한 스톡옵션·RSU 등 주식 기반 보상(SBC)으로 발생한 희석을 자사주 매입으로 상쇄하는 구조 역시 미국 기술기업 전반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다. 성장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해 대규모 SBC를 부여하고, 이를 다시 자사주 매입으로 보완하는 것은 일반적인 보상·자본정책이라는 설명이다.
감가상각 기간 역시 발생주의 회계 원칙에 따라, 해당 자산이 실제로 효익을 제공하는 기간을 기준으로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다. 이 때문에 버리가 지적한 것처럼 GPU 구매 기업들이 감가상각 기간을 연장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인위적 회계 처리나 ‘분식’에 가깝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회계 전문가는 “버리가 AI 생태계 내부의 순환 구조를 문제 제기한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엔비디아의 재무 숫자만 보면 비정상적 위험 신호라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AI 인프라 투자가 실제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투자자산 증가가 반드시 인위적 수요를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국 경제매체들 역시 버리의 비판을 “AI 투자 과열에 대한 구조적 경고”로 보면서도,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은 당분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엔비디아의 GPU 수요가 실제로 거품 신호를 드러낼지, 그리고 버리의 경고가 향후 AI 투자자금 흐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는 앞으로 글로벌 AI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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