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와 인도 타밀나두주 정부가 신규 조선소 건설에 관한 배타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HD현대]


[이코노미 트리뷴 = 이진석 기자]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HD현대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정부와 신규 조선소 건설을 위한 배타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HD현대의 인도 조선 시장 진출이 단순 검토 단계를 넘어 실제 사업 추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밀나두주는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조선소 후보지 4개 주 중 하나로, 향후 최종 부지로 확정될 경우 HD현대가 인도 현지 조선소 건립 파트너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도 현지 언론은 해당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를 약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으나 HD현대는 투자 규모와 방식 모두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타밀나두주 투투쿠디 지역은 기온과 강수량 등 기후 조건이 HD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과 유사하고 인근 항만에 대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예정돼 있어 대형 조선소 입지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정부는 조선·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조선소 증설과 신규 조선소 건립을 병행 검토 중이며, 이번 협약은 그 첫 구체화 단계로 해석된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판교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정기선 HD현대 회장(오른쪽)이 하딥 싱 푸리 인도 석유천연가스부 장관과 만나 조선·해양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HD현대]


이번 협약은 지난달 정기선 회장과 인도 정부 고위 인사 간 회동을 기점으로 논의돼 온 양측 조선 협력 구상이 실질적인 사업 단계로 옮겨진 첫 결과물로 평가된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지난달 13일 경기도 판교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하딥 싱 푸리 인도 석유천연가스부 장관을 만나 조선·해양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인도 국영 석유가스공사(ONGC) 회장과 코친조선소 회장, 항만청장 등 핵심 공기업 수장들이 대거 참석해 HD현대의 선박 설계·건조 역량과 스마트 조선소 운영 시스템을 직접 확인했다.

당시 인도 대표단의 방문은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 해양 전략인 ‘마리타임 암릿 칼 비전 2047’과 맞물려 진행됐다.

인도는 해운·항만·조선·해양플랜트 산업 전반의 자립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상선 규모를 1500척에서 2500척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5대 조선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240억달러 (한화 약 34조원)이상의 국가 투자가 예정돼 있으며 선박 신조 지원 정책도 병행되고 있다.

[사진 = KB은행]


인도가 이처럼 조선 산업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배경에는 무역 주권과 에너지 안보, 해양 안보, 제조업 고용 창출이라는 국가 차원의 복합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인도는 세계 5위 경제 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나 원유와 LNG 등 주요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해상 수송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출입 화물 역시 외국 선사와 외국 선박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자체 선대와 조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전시나 지정학적 긴장 상황에서 물류와 에너지 수급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인도 정부의 정책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중국이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인도 주변국 항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인도양 일대 해상 거점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인도의 조선 육성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인도는 단순한 상선 확보를 넘어 특수선과 에너지 운반선, 군수지원선까지 자국에서 직접 건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사진 = HD현대]


이 같은 정책 환경 속에서 HD현대는 인도 입장에서 단순 선박 발주처가 아니라 조선 산업 생태계 전반을 함께 구축할 수 있는 전략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는 올해 7월 인도 최대 국영 조선사인 코친조선소와 장기 협력 MOU를 체결하고 설계·구매 지원과 생산성 향상, 인적 역량 강화 등 전방위 협력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인도 국영 중공업 기업 BEML과 크레인 사업 협력도 확대했다. 향후 인도 현지 조선소에 골리앗 크레인과 집 크레인 공급까지 검토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이제 막 조선 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끌어올리는 초기 성장 국면에 진입한 단계”라며 “단기 수주보다 중장기적으로 현지 조선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는 기업이 가장 큰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와 건조, 설비와 운영 기술을 모두 갖춘 기업은 인도 정부 입장에서 선택지가 사실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jinlee@economy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