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현 현대자동차그룹 42dot 대표이사 사장이 HMG 개발자 콘퍼런스(HMG Developer Conference)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개발 전략과 차량 소프트웨어 적용 방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4일 현대자동차그룹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및 자율주행 전략을 총괄해 온 송창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사장) 겸 포티투닷(42dot) 대표가 자진 사임했다.
공식 사유는 ‘일신상의 사유’로 밝혀졌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 자율주행·SDV 부문이 기대만큼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따른 책임론이 함께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송 사장은 네이버 초대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으로 2019년 포티투닷을 창업했고, 이 회사가 2022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는 그룹의 SDV 전환과 자율주행 전략을 사실상 총괄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송 사장이 관장해 온 프로젝트는 기존 체계대로 차질 없이 진행된다”며 조직 안정에 방점을 찍었지만, SDV와 자율주행을 둘러싼 전략 노선이 중대한 분기점에 들어섰다는 평가까지 잠재우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테슬라 차량에서 FSD(완전자율주행) 기능이 작동 중이다. [사진 = 테슬라]
시장 환경도 송 사장 사임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감독형 FSD(Full Self Driving)’를 한국 시장에 공식 도입하며 일부 차종과 차주를 대상으로 제한적인 활용이 시작된 상태다. 현재 FSD는 하드웨어 사양(HW4)이 갖춰진 일부 모델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순차적으로 활성화되고 있으며, 법적으로는 여전히 운전자 상시 개입이 전제된 ‘감독형 보조 기능’으로 분류된다.
메르세데스-벤츠·BMW·혼다 등은 조건부 자율주행인 레벨3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며 제도권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여전히 고속도로 중심의 레벨2~레벨3 단계에 머물며, 도심 일반도로 자율주행 상용화에서는 경쟁사 대비 속도가 늦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기술 속도’가 아니라 자율주행을 대하는 철학 자체의 차이다.
테슬라 FSD(완전자율주행) 학습을 위한 주행 시뮬레이션 화면. 연기와 급차선 변경 등 돌발 상황을 AI가 인식·판단하도록 학습시키는 장면이다. [사진 = 테슬라]
테슬라의 FSD는 카메라 기반 영상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엔드투엔드(End-to-End) 학습’ 구조를 채택했다. 차량이 보는 영상 자체를 신경망에 그대로 입력해 인식·판단·제어를 한 번에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라이다나 고정밀 지도에 대한 의존도는 극히 낮다.
특히 테슬라는 전 세계 수백만 대 차량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실제 주행 영상과 주행 데이터를 AI 학습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 방대한 데이터를 자체 데이터센터와 AI 슈퍼컴퓨팅 인프라에서 처리해 신경망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학습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만큼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더 정교해지는 구조다.
테슬라는 이 방식을 통해 신호 체계가 복잡한 도심 교차로, 비보호 좌회전, 돌발 보행자 상황까지 AI가 스스로 판단하는 ‘완주형 도심 자율주행’에 근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현대차를 포함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라이다·레이더·카메라를 결합한 복합 센서와 고정밀 지도(HD맵), 규칙 기반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한 ‘정통 자율주행 노선’을 유지해 왔다.
이 방식은 안전성과 규제 대응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지도 변경이나 비정형 환경이 나타나면 대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고, AI가 스스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일반화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
결국 같은 자율주행 기술이라 하더라도 테슬라는 AI가 판단의 주체가 되는 방식, 현대차는 사람이 최종 책임을 지는 보조형 방식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AI’라는 테슬라의 선택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5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마셜 경영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지금이야말로 위험을 감수할 때(take risks)”라고 말하며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 USC 마셜 경영대 졸업식 연설 영상 캡처]
이 지점에서 두 회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술력’보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태도에서 갈린다.
테슬라는 FSD를 법적으로는 여전히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 규정하면서도, 실제 작동 방식은 AI가 가속·조향·차선 변경까지 사실상 주도하는 구조를 택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 책임 논쟁, 규제 당국 조사, 정치권 개입 등 대형 법적·사회적 리스크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이 리스크를 감수한 채 AI 중심 자율주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배경에는 “미래의 본질은 자동차가 아니라 AI”라는 내부 판단이 깔려 있다. 테슬라에게 FSD는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조종할 수 있는 범용 AI를 학습시키는 거대한 실험장이자 데이터 수집 인프라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로봇택시, 물류 자동화, 무인 운송, 휴머노이드 로봇 등으로 그대로 확장될 수 있다.
당장은 사고, 소송, 규제라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빌리티부터 물류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이러한 리스크를 피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테슬라의 판단이다.
반면 현대차는 사고 리스크와 법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존 완성차 산업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브랜드 신뢰를 지키는 전략을 택해 왔다.
송창현 사장의 사임은 이 두 전략 노선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발생한 하나의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자율주행 경쟁의 본질이 더 이상 ‘누가 기술이 빠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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