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 현대자동차]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이진석 기자]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사장 4명을 포함해 총 219명을 승진시키는 2025년 연말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미래 기술 경쟁력 확보와 조직 체질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는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 부사장 △정준철 현대차 부사장 △윤승규 기아 부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 담당으로 이동해 그룹 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전략 기능을 총괄한다.
승진 규모는 사장 4명,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신규 선임 176명으로 전년보다 20명 줄었다.
◇ 테슬라의 악몽?…현실에선 ‘운용의 문제’
특히 이번 인사는 현대차그룹의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략과 맞물려 해석된다.
SDV는 자율주행을 포함해 차량 소프트웨어 구조, 업데이트 체계, 생산·품질 관리 방식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에 따라 하러 신임 사장은 R&D본부장을 맡아 차량 개발 전반과 소프트웨어 협업을 총괄하고, 정준철 신임 사장은 제조솔루션본부와 구매본부를 책임지며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과 차세대 생산체계 구축을 이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하드웨어 경쟁력을 기반으로 SDV 전환 속도를 높이겠다는 그룹의 의지가 인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SDV 개발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인사는 이번에 결정되지 않았다.
송창현 전 AVP 본부장은 이달 초 사임 의사를 밝혔으며, 해당 조직은 현재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이를 SDV 전략의 후퇴로 해석하기보다는, AVP 리더십 공백 이후 추진 방식과 조직 구조를 재정비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테슬라와의 자율주행 전략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테슬라는 SDV를 기반으로 ‘FSD(Full Self-Driving)’라는 구독형 자율주행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법적 기준상 FSD 역시 레벨2 자율주행에 해당한다.
전방 주시와 즉각적인 개입 의무, 사고 발생 시 책임이 모두 운전자에게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주행 보조 기술과 법적 조건은 동일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양사 간 자율주행 기술 격차가 실제 운용 환경에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 마케팅과 사용자 경험(UX)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테슬라는 차량이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느낌을 강조하는 반면, 현대차는 운전자가 판단 주체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보수적 설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적 기준은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레벨2 자율주행에서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며 즉시 개입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핸들 조작 의무 역시 같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경우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사고 발생 시에는 오히려 운전자에게 책임이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네비게이션 기반 판단을 확대하고 개입 빈도를 조정할 경우, 실제 주행 환경에서 체감 성능의 차이는 상당 부분 좁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도심에서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 셔틀. 현재 국내 자율주행 버스는 시험 운영과 제한된 노선 중심의 서비스로, 운전석 없는 차도 일부 시범 운행되고 있다. [사진 =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이 이번 인사에서 SDV 총괄 단일 리더십보다는 R&D와 제조 축을 강화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완전 자율주행을 전면에 내세운 이른바 ‘테슬라식 SDV’보다는, 대량 생산 체계와 글로벌 규제 환경을 고려한 현실적·단계적 SDV 상용화 전략에 무게를 둔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현대자동차가 공장·물류·산업 현장 등 주행 환경이 제한된 영역에서 자율주행을 먼저 상용화하고, 이를 통해 기술 신뢰성과 운영 데이터를 축적할 경우, 완전 자율주행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는 기존 인식을 오히려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젊어진 리더십, 강화된 미래 전략
‘APEC CEO 서밋 2025’에서 장재훈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수소 경제 확산과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현대자동차]
한편 이번 인사에서는 세대교체와 외부 인재 영입도 병행됐다.
만 47세 부사장이 탄생했고, 상무 신규 선임자 가운데 40대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글로벌 거시경제 전문가인 신용석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를 HMG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영입한 점도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거시경제 분석 역량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장재훈 부회장은 모빌리티·수소·로보틱스 등 그룹 미래 사업 전반을 총괄하며 SDV 전략과 연계된 중장기 성장 전략을 지휘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글로벌 불확실성을 위기가 아닌 체질 개선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한 인적 쇄신”이라며 “SDV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사와 투자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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