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자동차 화재 사고가 빈발해 소비자 불만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가운데 화재 사고가 나 소비자들의 불안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화재 사고가 조사 중이지만 전기차 배터리에 따른 화재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코노미트리뷴>은 전기차 화재를 둘러싼 전기차 배터리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향후 개선 방안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최근 잇따른 전기자동차 화재로 외국산 전기자동차 업계는 물론 중국산 배터리 업체가 동반 위기에 빠졌다.
특히 전기차 화재의 주인공인 벤츠코리아와 테슬라는 자동차 안전도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벤츠와 테슬라가 탑재한 중국산 배터리 제품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 일어난 인천 청라동 벤츠 전기차 화재에 이어 국내 전기차 판매량 1위 업체 테슬라 차량도 정차 후 차량에 불이 나 이른바 ‘전기차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화재도 문제이지만 화재에 따른 주변 차량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한 데 따른 것이다.
인천 청라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주변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고 주민 12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경찰 당국이 벤츠 전기차 화재 이후 피해 차량 현황을 살펴보니 주변 차량 그을음 등 크게 작은 사고까지 합쳐면 피해 차량 숫자는 무려 880대에 이른다.
지난 16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기리 도로에서 일어난 테슬라 모델 X의 화재도 같은 맥락이다.
테슬라 모델 X 화재가 주차장이 아닌 일반 도로에 주차해 대형 사고를 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테슬라 X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대원 50여 명과 펌프차 등 장비 20여 대를 투입한 점은 전기차 화재가 쉽게 전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熱暴走: 배터리 연쇄 폭발)' 현상을 일으켜 짧은 시간에 섭씨 1000도 이상 고열로 치달을 수 있다“며 ”이때 불이 주변 차량으로 번지는 것은 1~2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전기차 배터리 팩이 방수·방진 처리돼 있어 차량 화재를 진압하기 어렵고 이에 따른 피해도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배터리 업계,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위기‘ 맞아
벤츠와 테슬라 화재로 중국산 배터리 업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계 순위는 △중국업체 CATL △중국 BYD △LG에너지솔루션 △일본 파나소닉 △SK온 △삼성SDI △中 CALB 순이다.
이 가운데 중국 배터리 업체(CATL·BYD·CALB)의 점유율은 34.3%이다.
이에 비해 한국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46.8%, 일본(파라소닉 등)은 13.6%다.
한국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중국보다 많지만 세계 1,2위를 중국 배터리 기업이 거머쥐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기차 화재는 중국산 배터리 업계에 치명타를 안겼다“며 ”이에 따라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산 국산 배터리는 세계적으로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받아 이번 중국산 배터리 화재를 계기로 국산 배터리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벤츠-테슬라 등 수입차 업계, 화재 따른 차량 불매 움직임에 ’전전긍긍‘
벤츠와 테슬라 차량 화재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 중국산 배터리업계는 물론 수입차 시장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한동안 세계 명차로 알려진 이들 차량의 화재로 차량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소비자가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는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는 지난 14일 기준 110여 대 벤츠 EQE 차종을 등록했다.
이 가운데 100대 가량이 지난 5일 이후 등록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최근 화재 영향으로 EQE 중고 매물 가격(6000만원)이 신차 가격(1억 원 가량)의 절반인 5000만원로 떨어져도 중고 매매가 거의 없는 분위기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 해외 명차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최근 차량 화재 영향인지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중고 매물 가격을 2000만원 내려도 찾는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산 차량에 대한 선호도는 중고차는 물론 신차 시장에도 영향을 주는 분위기다. 한국지엠이 올해 하반기에 내놓을 예정이던 전기차 ’이쿼녹스‘ 출시 일정을 미루는 것도 최근 분위기에 따른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3사, 안전성 갖춘 첨단 기술로 차별화
벤츠-테슬라 화재로 중국산 배터리 업계가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는 배터리 안전성을 높인 첨단 기능을 갖춰 중국업체와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두뇌' 격인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연구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BMS는 배터리 상태를 원격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치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은 사내 R&D(연구개발) 콘트롤타워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BMS를 직접 총괄한다“며 ”LG에너지솔루션 R&D 조직은 CTO, 사업부 개발센터, 최고제품책임자(CPO)·기술센터, 개발품질, 최고디지털책임자(CDO)·미래기술센터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약 10만 대에 이르는 전기차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제 사용 환경에 노출된 1만 개가 넘는 배터리를 직접 분석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얻은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술은 배터리 분석 알고리즘 기술을 확보해 배터리 화재 등을 막을 수 있는 기본 자료가 된다.
이에 질세라 SK온은 'Z-폴딩' 기술로 양극과 음극의 접촉 가능성을 차단해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추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SK온 관계자는 ”폴딩 기법을 사용하면 분리막을 양·음극 사이로 지그재그 형태로 쌓아 완전히 포개는 형태로 감싸기 때문에 양극과 음극 접촉에 따른 화재를 막는 등 차량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삼성SDI는 안전성을 대폭 끌어올린 '꿈의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구성 요소가 모두 고체이기 때문에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비교적 안전하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오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배터리 기준 강화가 본격화되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수혜를 볼 것“이라며 ”이들 배터리 3사의 배터리 제품이 저가 중국산 배터리보다 품질 등에서 우수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벤츠 전기차 사고 차량에는 중국 파라시스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은 리튬과 인산철로 양극재를 구성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NCM 등 삼원계 배터리 분야에서는 국산 전기차 배터리에 비해 기술력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산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 초기부터 NCM 배터리에 주력해 전기차에 이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LFP 배터리는 그동안 중국 업체들이 싼 가격에 대량 생산해온 가성비 제품”이라며 “이 제품은 재활용이 어려워 친환경과 거리가 있고 주행거리도 NCM에 비해 떨어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비해 NCM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아 에너지 밀도가 높고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며 “다만 단점은 배터리 셀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팩에서 폭발하는 문제점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국내 3사의 NCM 배터리 기술 노하우가 중국 등 경쟁업체에 비해 탁월해 차량 화재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며 “결국 벤츠 자동차 배터리 화재로 차량 제조업체들이 국내 배터리 업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기아,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기회‘로 삼는다
중국산 배터리 화재로 배터리 업계는 물론 완성차 업계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는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국산 전기차 안전도를 강조해 테슬라가 거머쥔 국내 전치가 시장 1위를 빼앗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18일 자동차 정보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1~7월까지 국내에서 전기차 2만60댈 팔아 기아(1만 8758대)와 현대차(1만 4843대)를 앞질렀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화재로 테슬라의 아성이 무너질 수 있다”며 “테슬라 안전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져 차량 구매자들이 테슬라가 아닌 현대차 등 국산차에 눈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우선 현대차와 기아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식 홈페이지에도 소개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종별로 구형 아이오닉, 1세대 코나 일렉트릭, 캐스퍼 일렉트릭은 LG에너지솔루션 제품이, 아이오닉5, ST1, 포터 EV에는 SK온 배터리가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기아 관계자는 “신형 레이 EV와 니로 EV만 중국 CATL 배터리를 썼고 나머지 차종은 모두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업체 제품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또한 배터리 성능 최적화에도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에 미세한 단락을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배터리 안전성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BMS는 배터리 과열 및 화재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현대차는 배터리 온도와 전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 트리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