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부감사제도 ⓶] 회계 투명성 강화 vs 기업 부담 증가, 신외감법의 딜레마

감사비용 급증으로 중견기업 경영 차질 발생
업종별 표준감사시간 조정 논의, 제도 신축적 적용 시도
밸류업과 연계한 지정감사제 면제, 회계 투명성 우려 확대

이코노미 트리뷴 승인 2024.08.25 14:21 | 최종 수정 2024.08.26 14:18 의견 0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분식회계 사건이 법과 회계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의도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한국 회계 투명성 기준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이와 함께 주기적 지정감사제 폐지를 줄곧 주장해온 이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 내에서 맹활약해 외부감사제도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이코노미트리뷴>은 국내 외부감사제도의 성격과 필요성을 짚어보고 기업들이 주기적 지정감사제에 반대하는 명분과 학계와 회계 전문가들이 이 제도를 지지하는 이유를 시리즈를 통해 심도 있게 짚어본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외부감사제도의 중요성과 현재의 논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표준감사시간(Standard Audit Hours)은 회계감사인이 회계 감사를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규정한 제도다. [사진 = Pexels]


지난 2018년 도입된 표준감사시간제도는 기업에 대한 감사 품질을 높이고 감사인 업무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를 통해 이 제도는 감사인의 독립성과 감사 품질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충분한 감사 시간을 확보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회계 부정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달리 이 제도가 기업에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논란이 됐다.

◇대한상의·중견련, 표준감사시간제도에 ’감사 비용 증가와 경영 차질‘ 호소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와 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표준감사시간제도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표준감사시간제도가 특히 중견기업에 감사 비용 부담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견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新)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상장 중견기업의 감사보수는 2017년에서 2021년까지 연평균 22%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외부감사법은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18년 11월부터 시행한 개정안이다. 이 법은 표준감사시간제를 비롯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신외부감사법이 등장해 기업이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이 크게 늘었고 표준감사시간도 연평균 12% 이상 증가해 기업 운영에 추가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재계 불만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2023년 6월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와 협의해 업종별 표준감사시간을 조정해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원회가 제도의 신축적 적용에 적극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제도와 관련된 규정을 마련하고 제도 운영을 감독하는 기관이 바로 금융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외부감사법에 토대를 둔 표준감사시간제도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와 협력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제도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해당 기업도 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금융위원회가 업종의 특성과 기업 규모를 고려해 표준감사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해 기업이 겪는 부담이 줄이고 있지만 중견기업에는 여전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상의·중견련, 주기적 지정검사제도에도 크게 반발

대한상의와 중견련은 표준감사시간제도 외에 주기적 지정감사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주기적 지정 감사제도는 상장법인이 연속 6개 사업연도 자유 수임 이후 3개 사업연도는 지정된 외부감사인에게 감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대한상의와 중견련은 이 제도가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업 감사 비용 부담을 늘리고 감사인의 전문성 및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감사제도가 감사인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국 기업의 비용 증가와 감사 품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견련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 감사제도로 감사 보수가 2018년 이후 급증하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주기적 지정 감사제도가 회계 불투명성을 오히려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정책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현재로서는 주기적 지정감사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아직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6+3 지정감사제‘ 여전히 논란 중심에

이처럼 표준감사제도에 대한 일부 보완이 이뤄지고 있지만 ’6+3 주기적 지정감사제도‘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포럼)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와 관련된 최근 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지정감사제 무력화 시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포럼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을 지적하며 이러한 사후적 짜맞추기 회계가 여전히 기업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자회사 회계처리를 변경한 사례를 들어 당시 외부감사제도가 기업 회계 부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포럼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러한 사례가 오히려 지정감사제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며 ”지정감사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시기상조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계 투명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정감사제를 폐지하는 것은 시장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4월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을 6+3제도와 연동해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에 대해 지정감사제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러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계업계와 일부 전문가는 이와 같은 방안이 회계 투명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회계법인의 한 대표회계사는 "특정 기업에 대해 주기적 지정을 면제해주겠다는 방안 자체가 외부감사를 징벌로 보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며 "밸류업을 하려면 감사를 제대로 받아야 하고 밸류업을 측정하는 항목에 가점 요인으로 지정감사제를 넣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밸류업을 위한 유인책으로 ‘지정 면제’라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기업들이 정확하게 감사를 받아 감사 비용보다 더 큰 효과를 얻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반대하는 모습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와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질적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평가하려면 한국기업의 소유구조 특성을 고려해 실질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우리나라 기업의 소수지배주주 체계에서는 전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보다 지배권의 사적이익을 추구할 유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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