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영풍-고려아연 분쟁 (1)

영풍·MBK에 맞서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
고려아연 “영풍, 투기자본과 손잡고 기술 해외로 유출”
영풍 “고려아연, 동맹가치 버려...중국에 매각하지 않는다”

이코노미 트리뷴 승인 2024.10.02 16:46 의견 0

최근 국내 재계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모으는 기업이 영풍과 고려아연이다. 두 업체는 지난 70여 년간 굳건한 협력자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최근 두 회사가 경영권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동지에서 적’으로 바뀐 셈이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트리뷴은 두 업체가 오랜 협력을 뒤로하고 갈등 양상을 보이는 원인과 주요 현안, 그리고 향후 전망을 4회에 걸쳐 기획기사로 다룬다. [편집자주(註)]

영풍과 고려아연이 75년간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경영권 분쟁에 돌입했다.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지난 75년간 한솥밥을 먹어온 영풍과 고려아연이 ‘동업 정신’을 버리고 대격돌을 벌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고려아연 최대 주주 영풍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할 움직임이 보여 이제 영풍과 고려아연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셈이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이번 주 최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MBK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을 공개매수하고 있어 고려아연도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지분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33.99%, 영풍·MBK가 33.13%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풍·MBK는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14.6%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럴 경우 영풍·MBK의 지분율은 47.73%로 치솟는다.

이를 위해 영풍·MBK는 이달 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7~14.6%)뿐만 아니라 영풍정밀(최대 43.43%)의 공개매수에도 나섰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계열사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MBK가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과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하면 고려아연 지분을 절반 가까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기에 충분한 지분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 측의 영풍정밀 우호지분은 35.25%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이 영풍정밀 지분을 영풍에 빼앗기면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개매수 마감일(4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영풍·MBK에 맞서 고려아연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영풍정밀이 영풍·MBK 동맹과 고려아연이 펼치는 경영줜 전쟁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양쪽 진영이 영풍정밀 공략에 실패할 경우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전쟁이 또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풍정밀은 시가총액이 4000억원 수준으로 고려아연(시총 약 14조2500억원)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MBK·영풍은 주당 2만5000원을 써서 영풍정밀의 지분을 최대 43.43%를 획득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은 영풍정밀 과반 확보를 위해 지분 15%가 필요하다. 이는 600억원 수준이면 가능하다.

◇영풍-고려아연, 경영방식 놓고 이견 보여 ‘75년 동업관계’ 종지부

영풍과 고려아연은 오랫동안 끈끈한 동맹관계를 보여왔다.

고(故) 최기호·장병희 명예회장은 1949년 영풍그룹을 공동창업한 후 1974년 경남 온산에 고려아연을 함께 설립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려아연은 영풍기업(현 영풍)의 자회사다. 영풍기업은 영풍그룹의 모기업이다.

그러나 최 창업주 손자 최윤범 회장이 2022년 취임한 이후 영풍 2세 겸 오너 장형진 고문과 경영전략에서 부딪히며 갈등을 빚어왔다. 최윤범 회장은 △수소·신재생 △자원순환 △배터리 소재 등으로 구축된 이른바 ‘트로이카 드라이브’ 경영을 선포해 눈길을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주력 사업은 아연과 연(납)을 생산한 후 판매하는 비철금속제련 사업”이라며 “최 회장이 기존 사업에만 안주하지 않고 친환경 사업 등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지속가능경영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지금껏 ‘무차입 경영’, ‘외길 경영’을 강조하는 등 경영전략으로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영풍은 최 회장의 경영 행보에 반감을 드러냈다.

현금성 자산 확보를 통해 경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영풍의 입장과 달리 최 회장이 이끄는 고려아연은 공격투자를 펼치며 회사 부채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영 방식을 놓고 큰 차이를 보인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려아연의 ‘야성적 충동’에 반발한 영풍은 장형진 고문이 주축이 돼 MBK와 지난달 초 손을 잡았다.

영풍과 MBK는 지난달 13일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실시한다고 밝히며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사실상 공식 선언했다.

이와 함께 영풍은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과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 등을 내며 최 회장을 압박했다. 이를 계기로 영풍은 최 회장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과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아무런 사전 협의나 논의 없는 일방적인 공개매수라며 기업사냥꾼의 적대적·약탈적 M&A라고 맹비난하는 모습이다.

◇고려아연, 기자회견 개최해 영풍의 경영권 인수 시도 맹비난

고려아연은 영풍의 경영권 확보 시도에 맞서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영풍을 맹비난했다.

이제중 고려아연 CTO(최고기술책임자)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제중 부회장은 1984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울산 온산제련소장 겸 기술연구소장,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 등을 거친 고려아연 핵심 경영층이다.

이 부회장은 “고려아연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섰다"며 이는 "수십 년간 밤낮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해 온 임직원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 영풍이 MBK라는 투기자본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며 “영풍의 적대적 M&A 추진에 본노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풍은 사업 부진으로 연속 적자에 시달리지만 해마다 고려아연으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만일 투기 세력이 고려아연을 차지하면 우리 핵심 기술은 순식간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은 무너진다”고 호소했다.

◇영풍, “고려아연 공개매수, 동업정신 위한 것...중국에 매각 안한다”

고려아연 주장에 영풍도 반격에 나섰다.

강성두 영풍 사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영풍이 MBK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고려아연을 중국 등 해외에 매각할 것'이라는 일부 주장에 "저와 MBK 김광일 부회장이 회사에 있는 한 고려아연을 중국 등 외국에 안 팔고 팔 생각도 없다"고 주장했다.

강 사장은 또 고려아연 직원들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강 사장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이유에 대해 '오죽했으면'이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 사태가 발생한 것은 최윤범 회장이 먼저 동업자 정신을 깼기 때문이며 그가 영풍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인 고려아연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최윤범 회장이 동업 정신을 먼저 깼다”며 이번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 배경은 고려아연의 '영풍 죽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려아연이 석포 제련소를 지구상에서 없애려고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며 “이를 알고 있는데 가만히 당하고 참고 망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보이고 주주를 위한 길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고려아연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제한 없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하는 정관 변경 안건이 영풍 반대로 무산되자 일방적으로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을 통보한 것이 영풍의 중대 결심을 부추기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강조했다.

황산취급대행계약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만들어진 황산을 수출하기 위해 항만부두 내 황산저장시설이 있는 온산항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일부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유상으로 이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 사장은 “황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부산물로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아연 생산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며 “지난 20년 이상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잘 유지돼 온 이 계약을 즉시 끊겠다는 것은 결국 석포제련소 목줄을 쥐고 흔들어 영풍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자사 유해폐기물 처리를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했지만 이를 거절해 갈등이 시작됐다고 밝혔지만 강 사장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근면·성실·인화라는 양사 동업 정신이 담긴 사훈의 의미를 먼저 깬 것은 최윤범 회장”이라며 “그 회사(고려아연)에 문제가 있는 것은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최근 입장을 보면 다시 화해의 길로 돌아가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두 회사 창업 정신을 훼손한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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