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상호관세 부과로 동남아 국가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협상을 통한 해법 모색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역국을 상대로 한 상호관세 부과에 글로벌 공급망이 대혼돈에 빠졌다.

미국 정부가 ‘세계의 공장’ 중국에 34%라는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중국의 뒤를 잇는 ‘대안시장’ 베트남에 대한 관세율은 무려 46%에 이르는 등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메가톤급 관세 폭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번 상호관세에서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레소토가 50%로 가장 높고 △캄보디아(49%) △라오스(48%) △마다가스카르(47%) △베트남(46%) △미얀마(45%) △스리랑카(44%) 순이다.

그 외에 태국이 37% △중국 34% △인도네시아 32% △대만 32% △파키스탄 30% △인도 27% △한국 25% △일본 24% △유럽연합(EU) 20% 등이다.

◇베트남, 중국보다 더 높은 상호관세 폭탄 맞은 속사정

상호관세 부과율을 보면 캄보디아, 베트남, 미안마,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 동남아 국가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 관세에 나섰으며 베트남은 미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0%까지 내리겠다는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상호관세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베트남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처럼 미국에 맞대응이 아닌 대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상호관세 폭을 내리기 위한 협상을 해법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관세율 부과의 자세한 근거를 밝히지 않아 동남아 국가들이 고율의 상호관세를 내야 하는 이유는 잘 알 수 없다”며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동남아를 미국 시장으로 가기 위한 ‘우회 수출 통로’로 활용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풀이했다.

이를 보여주듯 베트남은 지난해 대미(對美) 무역흑자 국가 순위에서 중국·유럽연합(EU)·멕시코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이 미국에 대해 1235억달러(약 181조원)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해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관세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대해 동남아 국가들은 대화로 관세율 조정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특히 베트남은 대미 관세율을 0%까지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미국과의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420억 달러(약 207조 원)로 국내총생산(GPD)의 약 30%에 이른다”라며 “베트남으로서는 미국 시장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율 37%이 적용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24%) 역시 보복관세가 아닌 협상을 통한 세율 인하에 초점을 두고 있다”라며 미국과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글로벌 기업 생산기지 ‘동남아’, 고율 관세로 휘청

한편 이번 상호관세로 그동안 중국에 이은 글로벌 기업 생산기지 역할을 해온 동남아 국가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동남아는 트럼프 1기(2017년 1월 20일~2021년 1월 20일) 행정부 당시 미국과 중국이 펼친 무역전쟁에서 큰 혜택을 얻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관세 장벽을 피해 중국 기업들은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 동남아로 옮겼다.

이 가운데 베트남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국 애플·인텔·나이키 등 중국 비중을 낮추려는 세계적 브랜드 제품을 생산해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해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09%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미국 등 해외시장에 수출을 늘려온 베트남 경제성장 방식이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크게 요동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태국도 36%라는 상호관세율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태국 상무부는 상호관세로 인한 수출 손실이 70억∼80억 달러(약 10조3000억∼11조7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올해 태국 GDP(국내총생산)이 0.2~0.6% 포인트 떨어질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해 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태국 상대 무역적자는 456억 달러(약 66조8000억원)로 2023년보다 11.7% 늘어났다.
인도네시아에도 32%의 높은 관세율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석유·가스를 제외하고 지난해 310억 달러(약 45조5000억원)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61억 달러(약 23조6000억원)가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뒀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상호관세에 미국기업도 타격 입는다

미국과의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한 동남아를 겨냥한 상호관세는 현지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베트남에는 나이키, 인텔, 애플 등 유명 미국기업 공장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나이키는 신발 제품의 약 절반을 중국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25%가 베트남에서 만든다”라며 “최근 나이키가 경쟁업체 대거 등장에 따른 가격 경쟁 등으로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이번 상호관세는 나이키 경영난을 부채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관세에 따른 피해를 보는 업체는 나이키뿐만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나이키를 비롯해 노스페이스, 팀버랜드 반스 등 미국 브랜드가 베트남에서 제품을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구조”라며 “트럼프의 관세에 미국기업이 피해를 보는 무역구조가 이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발(發) 관세폭탄으로 수입품에 관세가 부과돼 기업 비용이 증가하고 소비자 가격 상승을 부추겨 결국 소비자가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 기업 등 세계 기업이 관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려는 노력을 펼치겠지만 이는 결국 글로벌 물류망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 세계를 상대로 제품 분업을 해온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이 아닌 지역화와 특정 국가에 생산기지를 집중시키는 ‘탈세계화’가 속도를 내는 등 글로벌 생산 체계에 대변혁이 생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