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철강 수입 관세를 50%로 인상하고 쿼터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한국 철강업계가 미국에 이어 EU발(發) ‘이중 관세 충격’에 직면했다. 사진은 포스코의 철강 홍보관 ‘Park1538’ 광양 전경. [사진 = 포스코]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미국에 이어 EU(유럽연합)도 수입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철강 주요 수출국 한국에 빨간불이 켜졌다.

EU가 역내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철강 수입 쿼터(할당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철강 관세를 50%로 높이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조치가 당장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EU도 관세 정책을 펼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EU측을 설득하며 대응책 마련하는데 부심하는 모습이다.

한국 관점에서 EU는 철강 수출 1위국가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수입 철강제품 관세를 50%로 올린 데 이어 EU도 50% 관세 전쟁에 뛰어들었다”라며 “정부와 관련 업계는 EU의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해결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EU집행委, 철강 관세 높여 유럽 업계 보호 나서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유럽 철강업계 보호 대책을 담은 규정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규정안에 따르면 EU집행위는 수입 철강 제품에 적용하는 글로벌 무관세 쿼터를 지난해 기준 연간 3053만t에서 1830만t으로 47% 줄인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는 쿼터 외 수입 물량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50%로 두배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EU 집행위는 개별 국가별 수입 쿼터는 추후 무역 상대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시행이 내년 6월 끝남에 따라 이에 앞서 나온 이번 결정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경제지역(EEA) 국가를 제외한 모든 제3국에 적용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 약 380만t의 철강 제품을 EU에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약 263만t(2024년 7월∼2025년 6월 기준)은 한국에 부과된 쿼터를 통해, 나머지 물량은 글로벌 쿼터를 활용해 전량 무관세로 수출했다.

업계 관계자는 “EU는 수입 철강에 글로벌 쿼터를 부여해 어느 국가 제품이건 쿼터를 먼저 선점하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자칫 한국이 적용받는 수출 쿼터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글로벌 쿼터 역시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 ‘美 이어 EU까지’...국내 철강업계 ‘이중고’에 초긴장

EU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 철강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로 가뜩이나 미국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은 국내 철강업계가 EU 발표로 감당하기 쉽지 않는 ‘이중고’에 빠졌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50% 관세 정책에 수출 전선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EU도 쿼터를 줄이고 관세 장벽을 50%로 높인다면 올해 철강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라고 풀이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EU 철강 수출은 44억8000만 달러(약 6조3000억원)이다. 이는 단일국가 기준 1위 수출시장 미국(43억5000만 달러)과 1·2위를 다투는 상황이다.

그는 “전세계 철강업계는 그동안 글러벌 경기 침체로 철강제품 공급이 남아도는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중국이 자국내 소비하지 못한 철강 제품을 세계 무대에 쏟아내 세계적인 공급 과잉을 부추겼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철강 수요가 많은 건설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미국과 EU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관세 장벽을 쌓으면 업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 EU측 설득 외에 첨단 제품 개발-시장 다변화로 위기 해결해야

EU의 이번 결정에 업계와 정부는 해법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EU 집행위가 국가별 수입 쿼터를 추후 개별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며 “이에 따라 정부는 협상을 통해 철강 수출 쿼터를 최대한 확보하고 글로벌 쿼터 활용을 통해 EU 시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발표된 후속 조치안은 세부 운영 방안이 발표되지 않아 추후 이행법안 등을 면밀히 살펴 대응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업계는 정부 관계부처 및 협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EU가 국가별 물량 배분 때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해 이를 고려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라면서 "EU와 양자 협의 등을 통해 우리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우리 측 입장과 우려를 적극 개진하고 철강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철강 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EU 등 주요 통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시장 다변화와 첨단 기술력을 갖춘 철강제품 생산 등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거대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국가의 건설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자동차, 가전 시장에도 뛰어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기술 혁신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도 관세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해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범용 철강제품은 중국, 인도가 펼치는 저가 경쟁에서 밀리기 쉽다”라며 “미국과 EU 등 선진국을 공략하려면 후발 철강 생산국이 쉽게 추격할 수 없는 특수강, 자동차용 강판, 극저온 강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비롯해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제품을 내놔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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