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수출 호황을 이어가는 K방산이 예상치 못한 ‘약점’을 드러냈다.

전차·전투기·레이더 등 첨단 무기체계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정작 핵심 부품인 국방용 반도체의 국산화율은 사실상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사업청이 최근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의뢰해 발표한 ‘국방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무기체계에 탑재되는 첨단 반도체의 98.9%가 수입산이며, 특히 질화갈륨(GaN) 기반 반도체는 전량(100%) 해외 파운드리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GaN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소자보다 고출력·고효율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어 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통신체계·전력 증폭기 등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KF-21 전투기에는 수만 개의 송수신 모듈 반도체가 들어가며, 대포병 탐지레이더 628개·K-21 보병전투차량 1047개 등에도 다량의 반도체가 장착된다.

그러나 국산화 수준은 여전히 미미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원반도체의 외국산 의존율은 99.5%, 메모리 반도체는 98.8%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전쟁이나 공급망 위기 시 K방산의 생산라인이 한순간에 ‘올스톱’될 수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 “돈 안 되는 산업”…국산화 주저하는 파운드리

업계가 국산화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과 기술 제약이다.

국방용 반도체는 대부분 소량 주문형(Custom) 생산으로, 민수용처럼 대량생산을 통한 단가 절감이 어렵다.

국내 한 파운드리 관계자는 “방산용 반도체는 한 번 수주해도 수천~수만 개 수준이라, 수백만 단위의 상업용 공정과는 수익 구조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보안 인증(MIL-SPEC)과 품질 규격 등 군수 전용 요건이 까다로워 민간 공정과 병행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한화시스템·LIG넥스원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주요 파운드리(삼성전자, DB하이텍 등)도 군수 전용 라인을 별도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GaN·SiC(탄화규소) 등 화합물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공정과 달라 별도의 장비·보안 체계가 필요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감당할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웨이퍼·에피 성장·패키징 등 핵심 공정을 미국 Qorvo·Wolfspeed, 일본 Mitsubishi Electric 등 해외 전문 파운드리에 위탁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 美, ‘보조금+겸용 생산’으로 자립 모델 구축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인텔 팻 겔싱어 CEO와 함께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인텔]


미국은 같은 문제를 정반대의 방식으로 풀고 있다.

미 국방부(DOD)는 2023년 ‘Microelectronics Commons Initiative’를 출범시키고, 2027년까지 총 20억달러(약 3조원)를 투입해 군사용 반도체 팹 설립·장비 현대화·기술 인력 양성을 지원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군·민 겸용(dual-use) 생산체계를 법적으로 허용해, 기업이 군수 전용 설비를 상업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다른 대표 사례인 RAMP-C(Rapid Assured Microelectronics Prototypes – Commercial) 프로그램에는 Intel, SkyWater, Qorvo 등 미국 기업들이 참여해 군사용 반도체를 상업용 초미세 공정(예: 18A)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18A는 인텔이 2025년부터 양산을 추진 중인 1.8나노미터급 차세대 공정으로,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의 2나노 공정과 경쟁하기 위해 개발됐다.

미 국립표준기술원(NIST)에 따르면, 참여 기업들은 설비 투자비의 최대 2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DOD가 일정 기간 납품을 보장한다.

즉, 정부가 인프라와 초기 수요를 책임지고, 민간이 기술개발과 상업화를 주도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R&D 보조금 중심의 지원에 머물러 설비투자·납품보장·겸용생산 허용이 모두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돈을 대줘도 민간이 상업화로 수익을 돌릴 방법이 없다”며 “지원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 위성통신, ‘민군 겸용’의 실마리 될까

한화시스템이 영국 원웹(OneWeb)의 위성망을 기반으로 구축 중인 저궤도 위성통신 네트워크의 가상도. [사진 = 한화시스템]


K방산이 세계 수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국방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완제품 중심의 산업 구조 때문이다.

K9 자주포·K2 전차·KF-21 전투기 등 완성 플랫폼 수출은 활발하지만, 부품·소자 산업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위성통신 산업이 GaN 반도체 자립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GaN은 위성 송신부·5G 중계기·고주파 전력 증폭기 등에도 쓰이는 핵심 소재다. 다만 한국의 위성통신 산업은 아직 시장 규모와 기술 수준이 작고, 제도적 연계도 미흡하다.

미국은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 주도로 SpaceX·Lockheed·Qorvo 등이 참여하는 민군 통합형 R&D 체계를 운영하지만, 한국은 과기정통부·산업부·방사청이 각기 다른 예산으로 중복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민군 겸용 프로젝트 추진이 제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또 방산물자 지정제도 탓에 민간기업이 군수용 반도체 라인을 공동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 위성통신 산업, 장기적으로 ‘하늘 위 인프라’로 진화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스타링크 에비에이션(Starlink Aviation)’ 전용 항공기.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해 비행 중에도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 Starlink]


단기적으로는 수입품 활용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위성통신은 장기적으로 전략 산업으로 진화 중이다.

유럽우주컨설트(Euroconsult)와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위성통신 시장은 2024년 약 1600억달러(약 220조8000억 원)에서 2035년 3000억~4000억달러(약 414조~552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저궤도(LEO) 위성망 확대와 위성-스마트폰 직접 연결(Direct-to-Device) 기술 상용화에 따른 변화다.

저궤도 위성은 통신 지연이 30~40ms 수준으로 짧아, 지상뿐 아니라 항공기나 선박에서도 실시간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의 스타링크(Starlink)는 여객기와 원양 선박에서도 4K 영상통화와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 쿠이퍼(Kuiper), 영국 원웹(OneWeb) 등도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한화시스템의 ‘한화 SAT’ 프로젝트와 KT SAT의 KOREASAT 확장 사업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또한 위성은 통신망을 넘어 기상·정찰·지도·AI 학습데이터 수집의 핵심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은 이미 기후변화·탄소추적용 인공위성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고 있으며, 한국도 2030년대까지 정찰위성 5기 체계(425사업)를 구축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GaN 반도체는 단기적으로 수입이 훨씬 싸지만, 2030년대에는 위성통신과 AI·국방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 칩이 된다”며 “정부가 단순 R&D 지원을 넘어 민군 공동 팹 투자와 겸용 생산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방기술 연구원은 “미국이 위성을 수천 기씩 쏘는 이유는 군사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와 통신 주권 경쟁 때문”이라며 “지상망이 끊겨도 작동하는 통신체계를 확보하려면 한국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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