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진행된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미국에 3500억달러(약 509조원)를 투자해야 하는 한국은 당장 국내 투자 위축과 이에 따른 고용 감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16일 만나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대미 투자 확대에 따른 국내 투자 위축 우려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대기업 총수들은 각 기업의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밝히며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화답하듯 이 대통령은 정부가 기업이 처한 각종 규제를 해소해 기업하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 삼성 “450조 투자, 6만명 고용”-SK 600조원 투자-현대차 125조-LG 100조 투자 계획
16일 청와대와 재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 등 측과 재계 총수들은 휴일인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 모여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조치를 논의하며 감사와 격려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 부회장과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한·미 통상·안보 협상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힘써 주셨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이 자리에 계신 기업인 여러분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한미 간 협상 과정을 설명하며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남들이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 방어를 아주 잘 해낸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일부 걱정되는 측면들이 있다. 혹시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돼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그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잘 조치해 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염려에 대기업 총수들은 대규모 고용 창출과 투자확대로 화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그동안 대통령님께서 정말 많은 노고를 기울이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한 우려가 일부 있겠지만,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라며 "삼성은 투자 확대 및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과의 상생에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향후 5년간 국내 연구개발(R&D)을 포함해 총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지난 9월에 약속한 대로 향후 5년간 6만명을 국내에서 고용하겠다"라며 "R&D를 포함해 국내 시설 투자도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통령님의 신중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관세 협상을 잘 이끌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를 약속했다.
최태원 회장은 "원래 2028년까지 128조원대 국내 투자를 계획했지만 투자 예상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라며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만 약 6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고용과 관련해 “해마다 8000명 이상 꾸준히 채용해왔는데 (향후) 매년 1만4000∼2만명의 고용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성공적인 APEC 개최와 한·미 협상 타결을 통해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과 정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관세 협상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이 경쟁력을 회복해 글로벌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현대자동차그룹도 대규모 투자 확대로 정부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국내에서 향후 5년간 연간 25조원씩, 즉 2030년까지 총 125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계획했던 것보다 증가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은 또 ”나아가 올해 7200명이던 채용 규모를 내년 1만명으로 늘리고 국내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을 통한 수출량을 늘리겠다“라고 약속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끝까지 협상 과정을 이끌어 주신 정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그동안 이어졌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습니다. 앞으로 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국내 투자 확대를 통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구광모 회장은 ”향후 5년간 100조원의 국내 투자가 계획돼 있다“라며 ”이 가운데 60%를 소부장에 대한 기술개발에 투입하겠다“라고 전했다.
한미 간 관세협상에서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한 한화그룹도 조선업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은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정부에 감사드리며, 한·미 관세 및 안보 협상의 성공적인 타결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은 "우선 미국 필리조선소에 7조원 이상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라며 "미국 조선시장 투자는 국내 조선산업과 기자재 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했다.
여승주 부회장은 또 "대미 투자 외에 국내에서 조선·방산 분야에만 향후 5년간 11조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미국 조선시장 투자에 따른 국내 투자 감소 우려를 잠재웠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협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정부와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HD현대 역시 과감한 투자로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향후 5년간 국내에 15조원 규모를 투자하겠다“라며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 인공지능(AI), 기계로봇 사업에 8조원, 조선·해양 분야에 7조원을 투입하겠다“라며 세부 계획을 내놨다.
바이오시밀러 업체 셀트리온도 투자 행렬에 참여했다.
서경진 셀트리온 회장은 “제가 마지막에 발언하다 보니 같은 말씀을 반복할 수는 없지만, 이번 협상 과정을 지켜보니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의 베짱과 뚝심이 돋보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미국에 있는 저희 로비스트들도 ‘한국 정부가 정말 대단하다’고 전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현재 스타트업들과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를 1조원까지 규모를 키우겠다"라고 설명했다.
◇ 정부, 기업 활동에 장애주는 규제 과감하게 없애기로...총수 ”대통령 배짱 대단“ 칭찬
대기업의 이처럼 통 큰 투자 약속에 정부는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없앨 뜻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친기업, 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며 "기업이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게 정부의 주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규제 완화를 포함한 각종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가 세금 깎아달라는 얘기는 별로 안 좋아한다. 세금 깎아가며 사업해야 할 정도면 국제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그보다 여러분이 제일 필요한 게 규제 같다. 완화, 철폐 등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면 제가 신속하게 정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이라며 "R&D 또는 위험 영역에 투자해 후순위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우리가 인수한다든지, 손실을 선순위로 감수하는 등의 새로운 방식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지방 산업 활성화도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균형 발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지방의 산업 활성화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기업 총수들은 한미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 대통령의 협상력을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합이 잘 맞아 공동 대응을 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전적으로 우리 기업인 여러분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약 8분 남짓의 모두발언을 마치며 동석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향해 "우리 김정관 장관, 터프 사나이, 정말 애 많이 쓰셨다"라고 말해 회의장에 웃음이 터졌다.
김 장관은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국을 방문해 가진 공개석상에서 그를 '터프한 협상가'라고 지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계 총수들은 "정말 노고가 많으셨다. 감사드린다"(이재용 회장), "신중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협상을 잘 이끌어주셨다"(최태원 회장) 등 정부에 감사를 표시했다.
특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 성과로 관심을 모은 핵추진 잠수함(핵잠)과 관련해 여승주 부회장은 "핵잠 건조라는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라며 "한국의 국격이 올라가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정기선 회장도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라며 "미국 조선업 재건 사업을 저희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다짐다.
서정진 회장의 ‘이대통령 배짱론’도 눈길을 모았다.
서 회장은 "이번에 지켜보니까 대통령의 배짱과 뚝심이 대단했다. 오늘 아침 미국에 있는 로비스트들이 '한국 정부가 대단하다'라고 그랬다. 진심으로 존경한다"라며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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