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FOMC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 = 미 연방준비제도]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고용 둔화 등을 이유로 올해 세 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장기 국채 금리가 오히려 상승하면서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연준의 완화 기조와는 상반되는 시장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통화정책 판단을 둘러싼 딜레마도 심화되는 모습이다.
10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연준은 9~1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0∼3.7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9월(-0.50%포인트), 11월(-0.25%포인트), 12월(-0.25%포인트) 연속 인하 이후 동결 기조를 이어오다, 올해 들어 다시 9월과 10월, 이번 회의까지 3회 연속 인하에 나선 것이다.
연준은 의결문에서 “최근 몇 달 고용의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한다”며 고용 둔화를 이번 인하의 주요 배경으로 거론했다.
다만 이번 회의는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주요 고용·물가 등 공공 지표 발표가 지연·취소된 상황에서 열려, 정책 판단에 필요한 공식 통계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연준은 민간에서 생산된 고용 지표를 보다 적극적으로 참고해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외신들에 따르면 ADP는 미국 민간 부문에서 11월 한 달 동안 3만2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으며, 특히 소기업 부문에서 감소 폭이 컸다. 이는 미국 노동시장의 점진적이지만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 내부 기류는 추가 완화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기준금리는 중립금리로 추정되는 범위 안에 있다”며 “지금은 기다리면서 지금부터 경제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지켜보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를 두고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인하’라는 평가도 나온다. 금리를 내리면서도 향후 추가 인하 속도는 조절하겠다는 신호를 동시에 준 셈이다.
이와 함께 공개된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에서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는 3.4%로 9월 전망과 동일하게 유지됐다. 현재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내년 중 추가 인하는 0.25%포인트 한 차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 추이. 2021년 이후 장기 상승 흐름을 이어오며 2024~2025년 들어 4% 중후반대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료 = 미 연방준비제도(FRED)]
연준의 ‘신중 모드’는 최근 장기 국채 금리 상승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국면 속에서도 뚜렷한 하락 흐름 없이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고, 30년물 초장기 국채 금리는 상승 기류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장기 금리도 함께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단기와 장기의 금리 방향이 엇갈리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장기 금리 흐름을 두고 연준의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불신,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기대, 재정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장기 금리는 단순히 연준의 미래 기준금리 전망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물가 전망과 재정 안정성,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도까지 함께 가격에 반영되는 지표다.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확대, 정부 셧다운 등 정치 리스크, 파월 의장 임기 종료 이후 연준 리더십에 대한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장기 금리에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금리 상승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실물경제로 전달되는 경로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회사채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업의 장기 설비투자 자금 조달 비용은 대부분 10년물 국채 금리를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장기 금리가 오르면 연준이 단기 금리를 내려도 기업과 가계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리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다. 그 결과 기업 투자 위축, 가계 주택·소비 부담 확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이어지며, 통화정책의 경기 부양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용 둔화의 성격 역시 단순한 경기 순환 요인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현재 고용 둔화는 과잉 고용의 후유증, 생산성 증가, 정책 불확실성, 복수 직업 보유자 증가, 이민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금리 인하만으로 채용이 빠르게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통화정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파월 의장은 일부 고용 둔화가 AI의 영향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AI가 대규모 실업을 유발하고 있다면 실업급여 신청 건수에서 그 신호가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며 “아직까지는 그런 흐름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혁신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열린 경제 관련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백악관]
이번 FOMC에서는 위원들 간 이견도 표면화됐다. 두 명의 위원은 금리 인하 자체에 반대표를 던졌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명 인사인 스티븐 미런 위원은 다시 한 번 더 큰 폭의 인하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논의는 매우 신사적으로 이뤄졌으며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고 노동시장이 약화되고 있다는 인식에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준을 향한 정치적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금리 인하 발표 직후 백악관 회의에서 “금리는 내려가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며 “이번 인하는 너무 작았고 최소한 두 배는 됐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연준의 정책 독립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장기 금리 상승에 일부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당분간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해 ‘기다리며 판단하는 관망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장기 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는 한, 연준의 단기 금리 조정이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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