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10배 키워 엔비디아 뛰어넘는 ’K-팹리스‘ 업체 만든다’
전 세계에서 AI(인공지능) 등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팹리스 산업 규모를 현재보다 10배 늘리기로 밝혀 그 배경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 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장한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른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에 투자를 집중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2강’으로 도약하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경기도 남부에 오는 2047년까지 7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산업 집적지)를 구축할 방침이다.
◇ 팹리스 국제 경쟁력 강화 왜 중요하나
세계 1위 팹리스 기업 엔비디아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 엔비디아]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도와 한국이 ‘반도체 세계 1위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팹리스 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반도체 패권을 누가 쥐느냐가 AI 시대, 그리고 대한민국 미래·경제·안보를 좌우할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 지원 전략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팹리스 등 시스템반도체 육성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반도체 대학원대학 신설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 등 4대 목표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팹리스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 제조 공장)과 less(없다) 의 합성어로 스스로 반도체 공장을 갖지 않고 설계만 하는 반도체 회사를 뜻한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업체와 △반도체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Foundry, 위탁생산) △설계만 하는 팹리스 등 3가지로 나뉜다.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를 육성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유지관리하는 데 따른 막대한 비용과 기술 없이 반도체 설계 사업에 집중할 수 있어 투자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전자 등 종합 반도체 업체가 있는데 팹리스가 주목 받는 데에는 비용 효율성과 진입장벽 완화를 꼽을 수 있다”라며 “반도체 생산 공장 없이 설계 역량과 아이디어 그리고 전문인력만 갖추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팹리스는 생산공정이 아닌 설계와 혁신에 집중할 수 있어 시장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반도체 설계에 올인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장점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엔비디아 역시 대표적인 팹리스 업체”라며 “엔비디아는 AI 열풍에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GPU(그래픽처리장치), AI칩 등 핵심 반도체 설계를 맡고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와 TSMC에 맡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러한 팹리스 모델에 힘입어 엔비디아는 막대한 설비 투자 없이도 기술 개발과 혁신에 모든 자원을 집중할 수 있고 GPU 및 AI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 전망도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 따르면 세계 팹리스 시장은 오는 2030년 69억달러(약 10조원), 2034년에는 110억달러(약 16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에서 설계하는 반도체 칩은 스마트폰 통신칩을 비롯해 자동차용 반도체, IoT(사물인터넷) 센서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제품에 다 들어간다”라며 “이처럼 생활에 밀접한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의 중요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라고 풀이했다.
◇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집적단지 등장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예상 조감도. 완공 시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반도체 집적단지로 구축될 계획이다. [사진 = SK하이닉스]
정부는 팹리스 확대 외에 팹(반도체 생산공장) 인프라 강화에도 적극 나선다.
정부가 2047년까지 모두 700조원을 들여 팹(반도체 생산 공장) 10곳을 신설해 세계 최대·최고 수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지난 2월 용인 일반산단의 1호 팹 착공에 들어간 데 이어 6월에는 용인 국가산단의 토지 보상 공고를 진행하는 등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생산규모 못지 않게 기술력 강화에도 가속페달을 밟는다.
정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메모리 분야 우위를 지키고 신경망처리장치(NPU)와 지능형 메모리(PIM) 등 AI 특화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에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또한 전력 효율·피지컬 AI(AI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한 것) 핵심 부품인 화합물 반도체와 핵심 기술로 부상한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 개발에도 지원을 늘린다.
이와 함께 반도체 산업을 수도권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늘리는 수순도 밟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광주(첨단 패키징), 부산(전력반도체), 경북 구미(소재·부품)를 잇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를 만든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에 따른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대학원대학’을 신설하고 기업이 설립·운영에 직접 참여해 연간 300명의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김정관 장관이 반도체 전쟁에 임하면서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언급하며 반도체 정예군을 양성을 외친 점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라며 “이는 GPU 중심으로 고착된 글로벌 AI 인프라 구조 속에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설계 역량을 키워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라고 풀이했다.
igyeongcheol@economy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