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1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5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공급망 협력과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측면에서는 한계도 함께 드러낸 회의로 평가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날 발간한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결과: 포스트 APEC, 주요 과제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합의 내용과 특징을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은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아 역내 경제 회복과 포용·지속가능 성장 논의를 주도했다.
정상회의 기간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며 관세전쟁 격화를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점은 주요 성과로 꼽혔다.
정상회의에서는 △경주선언 △APEC AI 이니셔티브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 등 3개의 핵심 성과 문서가 채택됐다.
경주선언에는 역내 무역·투자 확대, 공급망 안정, 디지털 전환과 혁신, 포용적 성장에 대한 협력 방향이 담겼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APEC 역사상 최초로 AI에 대한 공동 비전을 제시한 문서로, AI 인프라 투자와 민관 협력, 포용적 기술 확산을 강조했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는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APEC 공통 과제로 격상시키고, 노동·보건·돌봄·인적자원 정책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보고서는 이번 경주선언에서 세계무역기구(WTO)와 다자무역 체제에 대한 명시적 지지가 빠졌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와 미·중 간 통상·기술 패권 경쟁이 APEC 합의 과정에 반영된 결과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기조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는 평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포스트 APEC 과제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추진 방향 재정립 △AI·디지털 분야 글로벌 규범 논의 참여 확대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등 전략산업 공급망 복원력 강화를 제시했다.
유럽연합(EU)이 마련한 인공지능 규범 ‘EU AI Act’. 기술 표준이 아닌 법·규제 방식으로 글로벌 AI 규범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특히 AI 윤리·안전·상호운용성·데이터 거버넌스 등 글로벌 표준 수립을 한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단독으로 새로운 글로벌 규범을 창출하기보다는, 미·EU·중국 등 주요국이 제시하는 상이한 AI 규범과 기준 사이에서 공통의 원칙과 기술적 기준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주도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 플랫폼 산업 전반에서 축적된 AI 활용 경험과 함께 미국·유럽과의 제도적 연계성, 중국과의 공급망 현실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APEC 회원국이 다양한 진영과 경제 수준으로 구성된 만큼 한국은 진영 간 연결자 역할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공급망 협력과 AI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규칙 기반 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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