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주 홀랜드(Holland)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생산 공장 전경. [사진 = LG에너지솔루션]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Ford Motor Company)와 체결했던 약 9조6천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하면서, 글로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국내 배터리 업계에 본격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공시를 통해 포드와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거래 상대방의 해지 통보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해지 금액은 9조603억원으로, 이는 2023년 말 연결 기준 매출의 28.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해당 계약은 2024년 10월 체결된 것으로, 2027년부터 2032년까지 6년간 유럽 지역에 총 7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내용이었다. 회사 측은 이번 계약 해지가 최근 정책 환경 변화와 전기차 수요 전망 악화 속에서 포드가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매출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단일 계약이 해지된 사례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실적 반영 시점은 2027년 이후지만, 중장기 생산 라인 가동 계획과 물량 배분 전략 전반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해온 상황에서, 전기차 시장 둔화가 장기화할 경우 북미 중심 투자 전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 해지를 포드의 전동화 전략 전반이 후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포드는 정책 기조 변화와 전기차 수요 둔화를 이유로 여러 전기차 모델의 개발·생산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이와 관련해 약 195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은 또 LG에너지솔루션과의 계약 해지를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배터리 기반 전동화 전략에서 속도 조절에 나선 대표적 신호로 평가했다. 이는 최근 SK온이 포드와의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JV) 체제를 정리한 흐름과도 맞물린다는 분석이다.
앞서 SK온과 포드는 2022년 미국 내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해 114억달러를 공동 투자했으나,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속에 합작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관계를 재편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이 전기차 시장 전체를 결정적으로 흔들 수준의 악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포드가 전기차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라는 점에서, 전략 수정의 충격이 모든 완성차 업체로 확산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북미 지역에서 포드 대신 스텔란티스, GM 등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전기차 외에 에너지저장장치(ESS)와 AI 인프라 연계 배터리 시장을 차세대 성장 축으로 육성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중심의 단일 성장 시나리오가 흔들리는 국면에서, 배터리 업체들도 수요처 다변화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불가피해졌다”며 “캐즘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한 체질 개선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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