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김용현 기자]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등 재계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전략적 선택과 주주 권리에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법 학자와 전문가들은 1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이사 충실의무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는 회사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행동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며 개정안은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포함한다. 이는 이사가 회사를 경영할 때 주주 이익도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원 세종대 교수는 "한국의 법·제도 환경에서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면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 한국 특유 법·제도 틀에 있다고 지적하고 충실의무 확대가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관훈 한국경제법학회 회장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이사 행위규범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이사의 책임한도 설정에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과도한 사법 리스크로 기업인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투자나 인수합병을 주저해 이는 기업 가치를 훼손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날 간담회에는 배임죄 폐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권종호 건국대 교수는 "이사를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상법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안 논란은 LG화학의 물적분할 사례로부터 시작됐다.
LG화학은 2020년 12월 1일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물적분할 이후 주가 하락으로 손실이 커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 부문이나 자산을 분리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절차를 말한다. 기존 회사는 분할된 사업 부문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하며 새 법인은 독립적으로 운영하지만 모회사의 자회사 형태로 남는다. 이러한 분할은 △사업의 집중 관리와 운영 효율성 향상, △독립성 강화 △투자 유치 및 전략적 제휴의 용이성을 목적으로 한다.
물적분할의 사례는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eBay)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PayPal)의 물적분할이다. 이베이는 2015년 7월 17일 자사 핵심 결제 서비스 부문 페이팔을 분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은 회사가 설명하는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분할이 장기적으로는 주주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두 회사가 각자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해 페이팔은 독립된 결제 서비스 성장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학계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주주 이익을 모두 평등하게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학계는 이를 강제하면 회사 장기 이익을 위한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좌절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개정안은 주주의 이익과 회사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이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철송 건국대학교 교수는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지배주주와 회사에는 이익이 되지만 일반 주주에 해가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철송 교수는 또 개정안 표현이 모호해 부당한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기업의 지배구조는 물론 재무구조 개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가의 단기 하락을 염려해 법을 바꾸는 대신 기업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도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를 도울 법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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