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단행한 대규모 관세 조치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면서, 관세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의의 초점이 관세 인상이나 보호무역 기조의 적절성보다는, 관세 부과 권한이 대통령에게 어디까지 위임될 수 있는지를 가리는 헌법적 판단에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현지 법조계와 외신들은 연방대법원이 관세 정책 전반을 부정하기보다는, 행정부가 광범위한 법률 조항을 근거로 사실상 세금에 준하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해온 구조에 대해 일정한 제약을 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의회의 명시적 승인이나 사후 통제 없이 대통령 재량으로 관세가 운용돼 온 관행이 헌법 원칙에 부합하는지가 이번 심리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는 분석이다.

◇ “관세가 아니라 권한이 문제”…IEEPA 남용 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4월 2일 백악관에서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관세 관련 행정 문서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 미 백악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의 중심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의 핵심 법적 근거로 활용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있다.

IEEPA는 국가 안보나 외교상 비상사태 발생 시 대통령이 금융 거래나 수출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률로, 본래는 제재나 자산 동결 등 제한적 조치를 상정하고 설계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특정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관세율, 적용 대상, 부과 기간까지 모두 행정부가 결정하면서, 의회의 역할이 사실상 배제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외신들은 연방대법원 심리 과정에서 다수의 재판관들이 “IEEPA 조항 어디에도 관세라는 단어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대규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관세는 단순한 행정 규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수입과 직결되는 조세 성격을 띠는 만큼, 헌법상 과세 권한을 가진 의회의 권한을 침해했는지가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관련 분석에서 “이번 사건은 관세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부여된 재량권의 한계를 설정하는 판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 환급 가능성 열리자…코스트코 등 기업들 ‘선제 대응’

[사진 = Pixabay]


법적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이미 환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들은 연방대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트럼프 관세의 일부 또는 전부가 무효화될 경우, 대규모 환급 문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까지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이 징수한 트럼프 관세 규모는 약 880억 달러(한화 약 123조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수입업체까지 광범위하게 부담해 온 비용이다.

이에 따라 관세가 무효로 판단될 경우, 환급 대상과 범위를 둘러싼 법적·행정적 쟁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전례는 있었다.

1998년 연방대법원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도입된 항만 유지세 중 수출 화물에 부과된 세금이 헌법상 수출세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수천 개 기업이 약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환급을 받았으며,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까지 환급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당시에도 환급 절차는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환급 대상 기간을 둘러싼 추가 소송과 행정 절차가 이어지면서, 실제 환급금 지급까지는 수년이 소요됐다.

◇ “환급은 자동이 아니다”…소송 몰리는 이유

미국 코스트코 매장 전경. [사진 = Unsplash]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서도 관세 환급이 자동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외신들은 무역 변호사와 통상 전문가들을 인용해, 관세가 위헌 또는 무효로 판단되더라도 기업이 관세 확정 이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환급 권리를 상실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핵심은 리퀴데이션(liquidation)이다.

이는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이 관세율과 납부액을 최종 확정하는 절차로, 통상 수입일로부터 약 10개월이 지나면 관세가 확정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2월 초부터 관세를 부과한 점을 감안하면, 첫 리퀴데이션 시점은 오는 12월 중순 이후로 예상된다.

리퀴데이션이 이뤄지면 기업은 관세 산정에 대해 별도의 행정·사법 절차를 거쳐야 하며, 환급 가능성도 크게 낮아진다.

이 때문에 코스트코를 비롯한 기업들이 판결을 기다리기보다, 리퀴데이션 이전에 선제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법적 권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 관세 정책의 분기점 될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의 물 공급 협정 이행을 문제 삼으며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SNS 게시물. [사진 = 도널드 트럼프 SNS 캡처]


코스트코의 경우 환급 규모는 상당할 수 있다.

회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전체 매출의 약 3분의 1이 수입 상품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지타운대 법대 산하 국제경제법연구소의 무역 전문가 피터 해럴은 코스트코가 최대 10억 달러에 달하는 환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관세를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도 공개 발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세를 “가장 선호하는 정책 도구”라고 언급하며, 멕시코를 상대로 한 추가 관세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외신들은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단이 향후 미국 통상 정책 운용 방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대통령이 관세를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법적 근거와 절차에 대한 기준이 보다 엄격해질 경우, 향후 행정부의 관세 운용 방식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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