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현대차가 매출·영업이익 등에서 역대급 성과를 기록하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선전했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내연기관 강화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향후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아와 현대차 등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회사 실적 개선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 지난해 매출·당기순이익·영업이익률·차량 판매량에서 ‘엄지척’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2위 완성차 업체 기아는 지난해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 시대를 일궈내는 성과를 거뒀다.

기아는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액이 107조4488억원, 영업이익이 12조667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0년 새 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종전 최대 실적이었던 2023년 매출(99조8084억원)과 영업이익(11조679억원)을 각각 7.7%, 9.1% 늘린 ‘성적표’인 셈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2023년 대비 11.5% 늘어난 9조7913억원으로 집계됐다.

또한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1.8%로 2023년보다 0.2%포인트 상승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기아는 지난해 차량 판매량이 2023년과 비교해 0.1% 증가한 308만9300대로 1944년 12월 11일 창사한 이래 가장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는 1944년 문을 연 후 1998년 현대차그룹으로 인수된 이후 처음 매출이 100조원대에 진입했다”며 “특히 회사 이름을 '기아자동차'에서 바꾼 2021년부터 4년간 매년 새로운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주춤해 판매량이 짐체국면을 맞았고 특히 전기자동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등 악재가 쏟아지는 가운데 기아가 이와 같은 성적을 거둔 데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가 창사 이래 매출액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거뒀고 영업이익도 2년 연속 10조원대를 거두는 등 놀라운 성적표를 거머쥐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영업이익 12조6671억원은 매달 1조원 넘는 수익을 남긴 셈”이라며 “전기차 캐즘 시대에도 기아는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고부가 차량 판매가 늘어 영업이익률이 2022년 4분기 이후 9분기 연속 10%대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기아는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 최고 수준인 12%에 육박하는 연간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세계 명차와 수익성 측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EV 등 친환경 차량 판매 강화도 회사 실적 일등 공신

기아가 지난해 깜짝 놀랄만한 경영 성과를 거두게 된 데에는 친환경 차량과 다양한 첨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를 탑재한 고급 차종을 무기로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과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기아의 지난해 친환경차량 판매대수는 2023년과 비교해 14.5% 증가한 16만4000대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친환경 차량인 기아 하이브리드차는 지난해 10만대가 팔려 2023년 4분기(7만6000대)와 비교해 31.7% 급증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보여주듯 “지난해 4분기 전체 판매대수 가운데 친환경차 비중(21.5%)이 2023 동기(19.9%) 대비 1.6%포인트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기아 친환경차는 지난해 세계 무대에서 63만8000대 팔려 2023년 대비 10.9% 늘었다“며 ”차종 별로 살펴보면 △하이브리드차(HEV) 36만7000대(전년 대비 20%↑)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7만1000대(19.5%↓) △전기차(EV) 20만1000대(10.2%↑) 등이다.

그는 또 “기아는 선진 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 하이브리드·EV(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를 계속 늘릴 예정”이라며 “신차로는 기아의 첫 픽업트럭 ‘타스만’, 인도 전략모델 ‘시로스’,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V5 등이 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 중국공장,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해 세계 무대 넓힌다

기아가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거둘 수 있는 데에는 중국 공장의 수출 거점 전환이라는 경영전략도 주효했다.

기아는 2017년 한국정부의 사드(THAAD·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 결정으로 중국이 반발하면서 중국내 실적 악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기아는 중국 자동차 공장을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이에 따라 기아 중국공장 가동률은 2023년 4분기 75%에서 지난해 4분기 96.7%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기아는 지난해 4분기 기준 중국 공장 수출 물량이2023년 2만3000대에서 지난해 5만800대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 중국공장에서 만든 차량은 약 42%가 아시아와 중동, 약 30%가 중남미로 수출돼 이들 신흥시장에서 판매량도 늘었다”고 풀이했다.

그는 또 “이를 통해 기아는 중국 공장을 수출 거점으로 삼고 미국 공장은 내수 공략에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투 트랙’ 생산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기아는 중국 옌청 공장에서 생산하는 EV5를 지난해부터 태국과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옌천 공장을 아·태 지역을 시작으로 중동 국가를 공략하는 수출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기아는 또 미국 자동차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에서 플래그십 전기차 EV9 생산을 시작했다.

이는 미국에서 조립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해 EV9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EV9은 99.8㎾h 대용량 배터리가 장착돼 1회 충전으로 501㎞를 달릴 수 있어 기아 전기차 중 주행거리가 가장 길다”며 “EV9 미국 조지아공장 생산은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고 북미 시장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형제기업 ‘현대차’도 글로벌 판매량 급증세

현대차그룹의 맏형 ‘현대차’도 형다운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대차도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75조2312억원, 14조239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대비 매출은 7.7% 증가, 영업이익은 5.9%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282조6800억원, 합산 영업이익은 26조967억원에 이른다.

이는 2023년에 세웠던 합산 최고 매출(262조4720억원)보다는 7.1%, 합산 최고 영업이익(26조7348억원)보다는 0.6% 증가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에 이어 현대차도 미국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며 “특히 현대차는 친환경차,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실적 호조의 주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태풍’ 등 향후 걸림돌 만만치 않아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올해에도 이러한 성적을 이어갈 것으로 장담할 수는 없다.

4년만에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주요 교역국에 10~20% 보편관세, 특히 중국은 무려 60%대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새 행정부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적극 권장해 친환경차 위주로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는 국내 자동차업계는 고민해야 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정부는 전임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점도 우리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는 취임식 직후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명령도 폐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확산이 주춤한 가운데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의 시장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미국 내 투자를 늘려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이라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명쾌한 청사진을 내놔야 이에 맞서 대응책을 촘촘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전기차 중심의 이전 정책과 달리 내연기관 차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